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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제14회 생명 주일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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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4-18 14:15 조회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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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생명 주일 담화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의 공동 책임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자, 한국 천주교회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고자 제정한 생명 주일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생명 경시의 세태를 성찰하면서 머지않아 어린이날을 누릴 어린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담아 생명의 고귀함과 탄생의 기쁨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오늘날 한국 사회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2024년 정부는 난임 여부 검사비를 포함한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을 소득 기준과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대폭 확대하여 지원하고 있고, 2019년 4월 헌법 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5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관련 법을 마련하지 못하여 입법 공백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 이른바 ‘조력 존엄사법’ 발의 이후 ‘의사 조력 자살’ 또는 ‘조력 사망’이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계속 논의되고 있습니다.

2. 지난 2023년 4분기 합계 출산율이 사상 처음 0.6명대로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고, 한국 사회의 출산 기피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정부 또한 다양한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출산 기피 현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산 기피 현상은 어쩌면 부모 세대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 절망적 사회를 차마 자신의 소중한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한 호소를 드러내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일컬어지는 ‘부의 양극화’, 사교육비 등 과중한 양육비, 치솟는 주택 가격과 물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 사회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남녀의 사랑과 일치로 탄생한 가정은 ‘부부 사랑의 증진’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창조’라는 의미도 함께 내포합니다. 가정은 생명을 전수하는 자리입니다. “가정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하느님의 선물로 환대하는 자리입니다”(「사랑의 기쁨」, 166항). 이는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인간이 깊숙하게 참여하는 방법이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 유지와 존속의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가정과 사회 형태의 변화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 부모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자녀의 출산과 양육은 부모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가정, 기업, 사회, 국가, 교회가 다 함께 출산과 양육의 과정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4. 노인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을 가족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원천으로 받아들이면서(「생명의 복음」, 46항 참조),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기반하여 존엄사의 권리를 주장하며 안락사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우리 사회가 다 함께 이들을 돌보는 일에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의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은 결코 고통스럽고 무익한 일이 아닙니다. “태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약하고 가장 보호 능력이 없는 구성원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생명의 복음」, 20항)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새로 태어난 생명에 대한 양육, 그리고 노인과 임종자에 대한 보살핌은 가정, 기업, 사회, 국가, 교회 모두가 공동 책임을 느끼며 ‘함께하는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아이를 함께 양육하고, 노인을 함께 돌보는 일은 가정 본연의 사명인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이며(「가정 공동체」, 17항 참조), 동시에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5. 생명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배아 폐기 등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인공 수정보다는 나프로 임신법을 통하여 난임의 어려움을 겪는 부부를 돕고, ‘낙태죄’ 관련 법을 신속히 마련하여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며, 안락사 허용 법안이 아니라 ‘호스피스·완화 의료’를 의무화하고 지원하는 법안이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촉구합니다. 생명 주일을 맞이하여 생명의 문화를 수호하고 죽음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모든 형제자매가 출산과 양육, 노인 돌봄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랑의 봉사는,
우리 이웃들이 특히 약하거나 위협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의 생명이 언제나 보호받고 증진될 수 있도록 지켜 주는 일입니다”
(「생명의 복음」, 77항)

 2024년 5월 5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문 희 종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