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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마르 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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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05 09:00 조회228회 댓글0건

본문

나병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자 그는 곧 나병 증세가

사라지면서 깨끗이 나았다"(마르 1,41).

 

 

 

오늘은 연중 제6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한 사람을 깨끗이 고쳐주시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지난주 복음) 후,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찾아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며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그때에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자기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였다.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자 그는 곧 나병 증세가 사라지면서 깨끗이 나았다"(마르 1,40-42).

나병은 예수님 시대에나 지금이나 불치의 병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살이 썩어 문드러져 가고 마디가 떨어져 나가는 신체적 파멸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큰 상처이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깨끗이 고쳐주신다.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께서 행하시는 육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주시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나병이란 어떠한 병인가? 나병은 특히 더러움(부정하다)의 개념과 관계되는 매우 심한 피부병의 하나이며, 발진성 피부병에 감염되었거나 앓았다는 뜻을 내포하는 어근에서 나왔다. 성서에서는 나병(히브리어 Nega; 네가)을 전염성이 강한 악성 피부병에서 심지어는 의복과 벽의 곰팡이까지 포함시켜 같은 범주로 다루고 있다. 나병, 즉 문둥병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동양에서 널리 알려진 병이었으며 그 역사는 B.C. 300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둥병의 유일한 실례가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민 온 이집트인의 미라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은 전염되는 부정이며, 이 병에 걸린 자는 치유되어 정화 예식을 거치기까지 공동체와의 상종을 금지시켰다. 오늘 제1독서에 이렇게 나온다.

"악성 피부병 환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윗수염을 가리우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야 한다. 병이 있는 동안은 그는 부정을 벗지 못한다. 부정하니만큼, 그는 진지 밖에 자리잡고 따로 살아야 한다"(레위 13,45-46).

성서에서는 이 나병을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내치시는 최상급의 재앙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계약을 어길 경우 이 재앙의 위협을 받았고(신명 28,35), 이집트인들의 여섯 번째 재앙에서(출애 9,9-11), 모세에게 시비를 건 미리암(민수 12,10-15)과 사제에게 화를 낸 우찌야(2역대 26,19-23)가 이 재앙으로 타격을 받았다. 나병환자는 의식상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으나, 성서는 결코 나병을 죄의 형태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 병이 생기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병의 치유는 자연히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신령한 하느님의 자비심에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요르단 강물로 치유되었던 나아만의 경우도(2열왕 5장) 하느님의 기적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호의의 표징이었으며, 예언자가 이루는 하느님 능력의 표징이었다.

구약성서에서 나병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잠시 모세를 괴롭혔던 나병이(출애 4,6-7) 있고, 그의 누이 미리암의 나병(민수 12,10-15)은 일시적인 건성이었다. 나아만은 자기 종족과 함께 마음대로 지내도록 허락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한센씨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백반이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하여 정신적 충격이 곧 심각한 피부 이상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서 요르단강에서 씻으라는 명령은 심리요법의 영역에 있어서 정신적 안정을 주는 중요한 암시적인 요소였을 것이라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당신의 손을 대시고 깨끗해지라고 명령하시면서 치유하신다. 예수님께서 치유의 한 부분에 손을 사용하셨던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오늘 나오는 나병환자는 엄밀한 의미의 한센씨 병인 나병이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백반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악성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병이라는 피부병의 범위 내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한 나병환자를 예수님께서는 깨끗이 정화시켜 공동체에 복귀시켜 주심으로써 정결과 부정 사이의 장벽을 기적적으로 없애주신다. 공동체와 격리되어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그를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삶 속으로 돌려보내주신 것이다. 그는 삶의 자유와 해방, 그리고 정신적인 기쁨과 평화를 얻은 것이며, 곧 구원을 얻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나병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곧 그를 보내시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해진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여라' 하고 엄하게 이르셨다"(마르 1,43-44).

율법에 피부병이 생기면 제일 먼저 사제들에게 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시고 계심을 보여주신 것이며, 율법을 지키심으로써 당신께서 하신 일들이 하느님의 법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이로써 사제들이 예수님께서 율법을 존중하고 계심을 알게 될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능력, 하느님의 권위를 가지고 계심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제1독서에 이렇게 나온다.

"누구든지 살갗에 부스럼이나 뾰루지나 어루러기가 생기면, 살갗에 문둥병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니 아론 사제에게나, 그의 아들 사제 중 누구에게든지 데려 와야 한다. 그는 악성 피부병이 머리에 난 환자이므로 사제는 반드시 그를 부정한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한다"(레위 13,2.44).

율법에 사제의 직분은 나병의 감염 여부를 판단하거나 증상별로 특수한 진단을 내릴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레위기 13장에는 사제들을 위해서 나병의 여러 가지 증상들을 설명해 놓았는다. 예를 들어 피부병이 생겼을 경우에는 사제는 환자에게 7일간 격리 수용을 선고하였고, 그 기간이 끝나는 날 환자는 다시 검사를 받아 병의 증세가 더 진전되지 않았으면 다시 1주일간을 격리했다. 그 기간이 끝나면 환자는 사제로부터 깨끗하다는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나병의 치유는 다른 질병의 치유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이 참으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라는 표징이다. 나병환자의 치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권위를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드러내신다. 따라서 나병환자의 치유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 중에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매우 중요한 기적의 하나로 전해진다. 

예수님께서는 나병을 치유받은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시는데, 나병환자의 치유에 대한 메시아적 표징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아직 드러내실 때가 아님을 아시고 그에게 함구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물러가서 이 일을 널리 선전하며 퍼뜨린다. 예수님께서는 그때부터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머무르시게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예수님께 모여들었다고 전한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에게 밝은 삶을 주시는 메시아이시다.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