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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루가 2,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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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25 15:32 조회239회 댓글0건

본문

아기 예수님을 안고 찬양드리는 시므온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루가 2,22).

 

오늘은 '성가정 축일'이다.

매년 교회는 성탄 8일 축제 내 주일에 성가정 축일을 지낸다. 교회는 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보여주며,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특별히 교회는 부모와 함께 사신 예수님의 삶을 소개하면서 참된 나자렛 성가정 생활을 본받게 한다. 오늘 복음은 부모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는 내용이다.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 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루가 2,22-24).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법령은 출애굽기에 이렇게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모태를 열고 나온 맏아들은 모두 나에게 바쳐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출애 13,2).

이스라엘은 모세의 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에 첫아들을 하느님께 바쳤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첫아들을 바쳤던 정결 예식이란 무엇인지 잠시 알아보자.

정결의 의미는 '흠 없음, 청결, 정화(카타르시스), 또는 숙정, 깨끗이 함'등의 뜻으로 성서에 많이 나온다. 정결이라는 말은 신성한 것에 접근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깨끗함을 뜻하는 개념이며, 고대의 모든 종교에 공통된 사상이다. 레위기 11장부터 16장에 서술되어 있는 정결에 대한 복잡한 법령은 구약성서 전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정결은 거룩한 공동체 속에서 예배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기 위하여 지켜져야 하는 율법상의 자격이다. 특히 예식에 참여하기 위한 정결은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다. , 예배에 관계되는 모든 것은 더 할 수 없이 깨끗해야 하고,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거룩한 것에 접근하지 못한다라고 율법은 정하고 있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모든 불결함이나 부정한 것은 종교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결 예식이 필요했다.

성서에서의 정결 예식을 보면 대부분 부정한 것은 그것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면, 신체나 의복은 세척에 의해서, 또는 속죄의 제물을 바침으로써 비로소 없어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일에 모든 백성의 부정과 죄를, 상징적으로 짊어진 염소를 사막으로 내쫓음으로써 전형적으로 정결 축제를 성대하게 지냈다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정결 예식을 치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행하던 전통적인 정결 예식은 예수님 시대에 와서 그 정신적 가치를 많이 잃고 공허한 의식이 되어 예수님께로부터 비판과 책망을 듣기도 한다.

마리아와 요셉은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 예식의 날이 되자 아기 예수를 야훼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는데, 그 곳에서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루가 2,25-27).

루가 복음사가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의 만남과 그가 노래한 찬양, 또한 그가 마리아에게 들려준 말에 대해서 대단히 중요하게 전달하고 있다.

시므온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당시에 예루살렘에 살았던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에 구원을 이루어줄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소망이 성취될 때, 주님의 그리스도(기름 발리운 자-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때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가 아기 예수를 만난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한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루가 2,29-32).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던 당시의 이 사건을 아기 탄생 이후의 정결 예식과 결합시킨다. 이 축복의 노래는 '시므온의 노래'라고 하며, 4세기 이후 서방 교회에서 매일 밤 기도에 이용하였다고 한다. 시므온은 이 노래에서 자기에게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주신 하느님의 선물인 구원에 대하여 감사함을 보여준다. 이 짤막한 찬가 속에는 구약성서의 암시가 넘치고 있는데 시므온이 지니고 있는 믿음의 중심인 메시아에 대한 대망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시므온의 이 말을 듣고 감격한다. 그리고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루가 2,34-35).

이 말은 메시아의 출현과 함께 동반되는 고통과 수난의 징조를 드러내 보여준 것으로, 시므온은 그분의 어머니에게도 그분과 똑같이 예리한 칼에 찔리듯 큰 아픔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슬픔과 아픔은 항상 아들의 고통과 함께 따라 다니는 것이며 아들의 고통이 곧 어머니의 고통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들이 함께 나누는 고통과 아픔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하며 이러한 사랑은 가정이라고 하는 곳에서만 이루어진다.

루가 복음사가는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 왔다.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루가 2,36-38).

안나라는 사람은 아셀지파 파누엘의 딸로 여 선지자, 여자 예언자였다. 이 여자가 성전을 거주지로 삼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셀지파의 여자들은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서 주로 왕족과 대제사장들과 결혼했다고 한다. 아셀지파는 바빌론 유배에서 팔레스티나로 돌아올 때에 귀환한 족속 중에 들어 있지는 않았는데, 이 여 예언자처럼 많은 가계들이 일부 귀환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안나가 젊었을 때 겪은 전쟁과 고난의 시기는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강하게 갈망하게 하였다. 구원과 민족의 해방에 대한 희망은 그녀가 80년 이상을 기다리며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 되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정결 예식에서 아기 예수를 보는 순간 구원과 해방의 날을 본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은 아기를 통하여 충분히 보상을 받는다. 그녀는 예루살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날이 왔음을 증인이 되어 선포한다.

이렇듯 루가 복음사가는 아기의 정결 예식에 있었던 시므온과 안나와의 만남을 이스라엘에 구원의 날이 왔음을 선포하는 사건으로 중요하게 전하고 있다.

정결 예식을 마친 부모는 아기와 함께 나자렛으로 돌아간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 갔다.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루가 2,39-40).

아기를 하느님께 바치고 고향인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온 성가정의 모습은 평화스러웠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가정으로 은총과 축복이 넘치고 있었다.

오늘 주님의 성가정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넘치는 성가정이 되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넓은 의미로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가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한 가족이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정과 같은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