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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일(마르 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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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12 09:50 조회233회 댓글0건

본문

사막은 악마가 유혹하는 땅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2-13).

 

오늘은 사순절 제1주일이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40일 동안 재를 지키는 사순절 제1주일 복음은 짧지만 두 가지 큰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에 대한 말씀이고, 또 하나는 '갈릴래아 전도 시작'이다. 먼저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시어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신 모습을 살펴보자. 복음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2-13).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사가나 루가 복음사가처럼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받으신 유혹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지 않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악마로부터 '빵과 하느님에 대한 시험, 우상 숭배'에 대한 3가지 유혹을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광야로 내보내어져 40일 동안 광야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고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요르단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시어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에 의해 광야로 내보내지신다. 광야로 내보내지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그곳에서 지내시면서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왜 광야로 내보내지시어 유혹을 받으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전도를 시작하시기 전에 받으신 이 유혹은 오늘날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큰 의미와 교훈이 되고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의 의미와 교훈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신 광야, 즉 사막에 대한 종교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사막은 성서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지리학적으로 사막이란 하느님께서 축복을 내리지 않은 땅이다. 거기에는 물이 귀하고, 마치 비오기 전의 낙원과 같아서 풀과 나무가 드물어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이러한 황무지에는 마귀들, 귀신과 해로운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축복이란 없는 그러한 곳이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사막이 상징하는 것은 이와는 반대로 그 의미가 매우 깊다. 

성서에서 사막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먼저 그들로 하여금 이 가공할 땅을 통과하게 하신 곳이다. 즉, 그곳은 하느님의 백성이 탄생하는 구세사의 한 시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냈던 사막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시련의 시기요, 배신의 시기였으나, 하느님의 편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시기였다.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살았던 사막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당신의 권능과 현존를 보여주신 곳이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율법을 받았고 하느님과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참다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백성이 사막에서 탄생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 돌이켜 보면 사막은 하느님께 대한 불충을 드러낸 곳이기도 했다. 사막 생활은 겪어야 할 시련을 극복할 줄 모르는 인간이, 참을성 없이 하느님의 사랑과 배려를 등지고 그들의 마음을 폭로해 버렸음을 보여준 교육의 장소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투덜거리는 백성에게 놀라운 양식과 물을 내려주셨으며, 죄인들을 처벌하셨지만 구리뱀과 같은 뜻밖의 구제 방법을 마련해주셨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심과 자비를 줄곧 드러내신 곳이 사막이기도 했다. 하느님의 최후 승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 사막의 시기는 백성의 편에서 본 불충실의 시기라기보다는, 반역자를 일깨우시고 당신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시는 하느님 편에서의 자비로운 충실의 시기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한다면 사막의 시기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아버지다운 배려의 시기였다. 

따라서 사막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기서 죽음을 당했다는데 있지 않고, 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시련을 겪도록 하셨다는 데에 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사막의 시기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회상해 볼 때 하나의 아름다운 과거였다.

또한 사막이 나타내는 또 다른 의미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준비의 장소였다. 호렙산으로 가는 엘리야는 사막을 피신의 장소로 찾았을 뿐만 아니라, 기운을 다시 회복하는 장소로 사막을 찾았다(1열왕 19장). 따라서 사막 생활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시기였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사막에 살게 하지 않으시고, 다만 약속된 땅에 이르기 위한 통과지로서 사막을 거치게 하셨을 뿐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힘을 키운 구세사의 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묵시문학 작품에서는 마지막날에 이루어질 구원은 사막이 낙원으로 변하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때에 메시아가 사막에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여자는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 곳은 하느님께서 천 이백 육십 일 동안 그 여자를 먹여 살리시려고 마련해 두신 곳이었습니다"(묵시 12,6).

신약에 와서 사막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꿈란 공동체처럼 엣세니 공동체들은 도시와의 격리를 주장하면서 피신의 장소로 사막을 선택했고, 세례자 요한에게 있어서 사막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회개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밟아온 과정을 당신 스스로 밟으시려고 사막을 택하셨다. 그분은 그 옛날 히브리인들처럼 하느님이신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대로 사막에서 유혹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성조들과는 달리 유혹을 극복하시고 아버지께 충실한 나머지 빵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적보다는 신뢰심을, 지상 권력의 망상보다는 하느님을 모시는 길을 택하셨다. 이집트 탈출과 사막 시대에 실패로 돌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혹과 시련은 예수님께서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하심으로써 이스라엘 과업을 성취하신 맏아들 예수님 안에서 그 본래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다.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고 하면서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을 그분이 되찾으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사막이 상징하는 의미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걸어가는데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세상은 아직 넘치는 악의 세력으로 위험과 유혹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사막이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훗날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타파하시려고 돌아오실 때까지 사막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막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보다는 말씀으로 사는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셨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보여주셨고, 영적 양식인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밝은 희망은 우리가 비록 사막에 놓여있지만 악의 세력으로 유혹 속에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은총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써 전도를 시작하실 수 있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시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신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마르 1,14-15).

예수님께서 전도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마디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을 알리신 것이다. 사막인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시며, 감히 누구도 밝힐 수 없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아직 어떻게 시작되고 완성될 것인지 신비에 가려져 있지만 예수님의 내림과 더불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셨고, 그 신비는 예수님에 의해서 서서히 밝혀질 것임을 암시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시면서 세례자 요한과 똑같은 회개에 대한 호소를 당신의 말씀으로 되풀이하시고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기를 가르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회개의 시기인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유혹이 넘치는 이 사막의 시기를 성체성사 안에서 잘 극복하고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