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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마르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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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19 12:28 조회163회 댓글0건

본문

죄를 용서하시는 분에 대한 선포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마르 1,4)."



  오늘은 대림절 제2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전하고 있다. 오랜 기다림과 희망이 이루어지려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세례자 요한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에 대한 기쁜 소식과 그 기쁜 소식을 외치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는 700년 전 구약에서 이미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하였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기쁜 소식에 대해서 오늘 제1독서에 이렇게 나온다.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너, 예루살렘아.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질러라. 유다의 모든 도시에 알려라. 너희의 하느님께서 저기 오신다(이사 40,9).
  또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면서 그분에 앞서 그분의 오심을 알리는 한 소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이사 40,3).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사야가 예언한 하느님께서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복음서 서두에 인용하면서 세례자 요한에 의해서 다시 선포되고 있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이제 내가 일꾼을 너보다 먼저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였고 또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마르 1,1-3).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시작하면서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에 앞서 보내진 사람이 세례자 요한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앞서온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에 앞서 주님의 길을 닦아 놓기 위하여 먼저 오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를 아직 이름이 없는 한 소리라고 하였는데, 그 예언이 세례자 요한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700년 전에 메시아의 오심과 세례자 요한을 예언했던 이사야 예언자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이사야는 B.C. 721년 북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고, 남부 예루살렘마저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나타난 예언자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북부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200년 동안 우상숭배에 빠지면서 하느님께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죄에 대한 벌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데, 결국 북부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부 유다인 예루살렘마저도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면서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이사야가 나타나 그들의 잘못된 삶을 책망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곧 오신다는 예언을 하였다. 그리고 이사야는 주님에 앞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대해서도 말하면서 그를 한 소리 있어 외친다 하고 말하였다.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을 주님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온, 구약에서 예언된 한 소리-외침이라고 전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 그 때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마르 1,4-5).
  공관 복음서를 보면 저자에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약간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라고 하였고,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 하늘나라의 도래보다는 죄의 용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즉 복음사가는 오시는 메시아에 대해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신 분으로 보았으며, 주님의 오심과 동시에 우리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우리가 용서받아야 할 죄에 대해서 특히 구원의 역사 안에 잘 나타나고 있다. 구원의 역사는 죄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사악성이 어떠하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널리 번지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죄의 본질뿐만 아니라 죄와 대립되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죄를 사하기 위해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서도 잘 가르쳐주고 있다. 따라서 구원의 역사는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꾸준히 사랑을 베푸시고 애쓰신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류 역사의 서장을 장식하는 인간 타락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아담의 죄이다.
  아담의 죄는 본질적으로 불순종이었다. 하느님의 계명을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깨뜨리고 하느님을 거역한 불순종이었다. 성서는 불순종으로 하느님을 거역한 외적 행위 뒤에 숨어 있는 내적 행위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들이 뱀의 유혹에 빠져서 선과 악을 아시는 하느님과 똑같이 되기를 탐하는 데서 출발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죄는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을 대신하여 선과 악을 결정하고, 창조주께 종속되기를 거부함으로써 하느님께 결속시키는 끈을 끊어 버린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한 죄가 의미하는 것은 뱀의 유혹에서 나타나는 정신적인 악이다. 뱀이 여자를 이렇게 꾀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창세 3,4-5).
  인간이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교만과 인간의 마음속에 하느님과 경쟁 상대가 되고자 하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를 하느님을 믿지 않으려는 인간의 정신적인 부패요, 근본적인 타락이라고 말하고 있다.
  죄의 결과로써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인간은 야훼 하느님을 피하여 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은 것처럼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하느님을 기피한다. 그리고 낙원에서 추방되어 쫓겨나면서 그때에 비로소 하느님의 경고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생명의 나무(하느님의 생명)에 가까이 갈 수가 없어졌고, 결국 결정적인 죽음이 주어진다. 그리고 죄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을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도 분열을 일으켜 책임 회피, 살인, 폭력과 약육강식의 법이 지배하는 시대를 출현시킨다.
  인류 역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아담의 죄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초에도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스라엘은 한 민족으로 탄생된 직후에 아담의 비극을 반복한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지상의 모든 백성들 가운데서 선택되어 하느님의 장자라는 특전을 입었으나, 우상을 만들어 경배함으로써 하느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죄를 저지른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기를 거절하는 죄이다. 스스로 자신을 확립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은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따라서 당시에 예언자들의 설교는 그러한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고 질책하는 데 대부분을 할애하였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죄가 무엇인지를 반복하여 가르치시고 교육하셨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도 주님께서 오시기에 앞서 먼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하고 외친다.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마르 1,6).
  마르코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하고 참회하는 모습과 삶을 간단하게 언급하면서 그가 구약에 예언된 주님에 앞서 온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마르 1,7).
  세례자 요한은 뒤에 오시는 분 앞에 자신을 한없이 낮춘다. 그는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라고 자기 신분을 말함으로써 주님에 앞서 온 선구자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마르 1,8).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세례와 장차 주님께서 베푸실 세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기가 베풀고 있는 세례는 성령의 세례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자신이 베풀고 있는 물의 세례는 정화의 세례로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요,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한 세례임을, 그리고 그분이 베푸실 세례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가 아니라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성령의 세례임을 증언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세례는 곧 성령의 세례이다.
  이제 주님이 오실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하고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면서 주님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