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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요한 1,6-8.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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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21 11:05 조회158회 댓글0건

본문

메시아의 기원과 예수 그리스도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요한 1,7).

오늘은 대림절 제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빛이신 분'에 대해서 증언하는 내용이다. 먼저 요한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요한 1,6-8).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이 누구이며,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유다인들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분명하게 밝힌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대사제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이때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그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다시 묻자, 요한은 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기다리던 그 예언자요?' 그들이 다시 물었을 때 요한은 그도 아니라고 하였다"(요한 1,19-21).

유다인들은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다급해진다. 400년 전 에즈라 이후 이렇다할 예언자가 나오지 않았던 이스라엘에 예언자의 모습이 비쳐지는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그들을 더욱 초조하게 한 것은 그가 혹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 있어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간절했으며, 곧 오시리라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애타게 기다렸던 메시아는 누구인가? '메시아'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자. 어원을 보면 히브리어와 아라메아어에서 유래한 '메시아'와 그 낱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그리스도'라는 말이 있다. 이는 둘 다 '기름 발리운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두 낱말이 사도 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의 고유한 이름이 되었는데, 두 이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다른 모든 이름을 집약하는 칭호가 되었다. 그러나 구약성서나 유대교에서 사용하던 메시아라는 낱말은 신약에서 '그리스도'라는 낱말에 부여하는 풍부한 의미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즉 '메시아'라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말보다 신학적으로 그 의미가 넓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세기에 걸쳐 희망을 가져다준 '메시아'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면, '기름 발리운 자'라는 말로 무엇보다도 먼저 왕을 지적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후에는 사제와 같은 인물들을 지적하는 데도 사용하였다.
  구약성서에서 역사적으로 기름 바르는 행위는 하느님의 영에 의해서 어떤 직무에 서임됨을 상징하였다. 즉 왕은 도유됨으로써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백성들을 위한 직무를 완수하는 데 축성되었으며, 이 축성식은 왕의 대관식에서 매우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의식이었다. 따라서 성서는 사울, 다윗, 솔로몬, 그리고 왕위에 오른 그의 자손들이 기름 발라 축성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야훼에 의해서 '기름 발리운 자'인 왕은 모든 백성들로부터 종교적으로 존경을 받는 신성한 인물이 되었으며, 기름 발리운 모든 왕들은 하느님께서 축성하신 그 시대의 메시아였다.
  그런데 나단의 예언으로 야훼에 의해 기름 발리운 자는 다른 왕들은 제외되고 오직 다윗 왕조의 왕에게만 고정되었다. 나단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였다.
  "네 몸에서 난 자식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터이니 그가 국권을 튼튼히 하고 나에게 집을 지어 바쳐 나의 이름을 빛낼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든든하게 다지리라.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사무 7,12-14).
  예언자 나단이 야훼의 말씀을 전해줌으로써 다윗 왕조 출신의 역대 왕들만 하느님의 계획을 수행하는 그 시대의 메시아가 되었다. 따라서 다윗 왕조의 왕들에게 기름을 발라 축성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셨음을 표시하는 것이었고, 또한 야훼 하느님의 양자가 되었음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왕들 역시 스스로 하느님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맺은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 왕조를 틀림없이 영원히 보존하여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였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야훼로부터 '기름 발리운 자'가 이방인들의 포로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크게 당황한다. "왜 야훼께서 당신의 아들인 메시아를 버리시고 모든 이방인들이 그를 모독하도록 하셨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윗 왕조가 당한 치욕은 이스라엘 신앙에 큰 시련이었고, 이 시련은 유배에서 귀향하여 이스라엘을 재건한 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다. 한동안 즈룹바벨에 의해 왕조가 재건될 것 같은 희망이 있었으나 수포로 돌아갔고, 이후로 이스라엘에 다윗 왕조와 같은 지도자로서 메시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메시아관은 서서히 바뀌어진다. 과거 예언자들이 충실하지 못한 왕들(기름 발리운 자들-메시아)의 잘못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 '미래의 왕'에게 희망을 두도록 가르쳤던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진실하고 충실한 메시아가 미래에 오시리라는 믿음이 유배 생활 이후에 크게 발전되어 나간다. 시편을 보면 메시아가 받을 영광과 치러야 할 투쟁과 얻게 될 승리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서 이러한 성서적 말씀을 근거로 굳은 희망을 유지하였으며, 신약시대에 가까이 와서는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서 그 희망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기름 발리운 자-메시아'에 대한 의미가 사제들에게 주어진다. 바빌로니아 유배 이전에 쓰여진 성서에서 사제들이 도유되었다고 말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그러나 유배 이후에 이렇다 할 왕이 나타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대제관들이 으뜸이 되자 사제들의 위신이 커가면서 그들이 도유된다. 이때부터 사제들에게 자기 직무에 서임되기 위해 축성될 때 기름 바르는 의식이 거행된다. 이로써 유배 이후 대제관들은 도유된 사제, 즉 과거의 왕들처럼 그 시대를 위한 메시아가 된다. 따라서 세상 종말에 가서는 사제직과 왕직이 떼어놓을 수 없이 일치될 것이라고 한 예언자들의 예언을 해석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마지막 시대에는 두 분의 메시아가 내림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나는 사제인 메시아로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상의 왕인 메시아로서 지상적 사물을 담당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유다인의 종말론에서는 메시아를 기대하는 사상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왕인 메시아를 기다렸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사제인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약속은 동시에 '하느님 왕국의 실현'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또한 구원을 실현시켜 줄 인물을 '야훼의 종'과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알아듣기 어려운 예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심으로써 말끔히 해소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께서 오심으로써 모든 애매한 점들이 풀어진 것이다.
  메시아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기다림을 가졌던 유다인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여 물었는데 요한으로부터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당황한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해 줄 말이 있어야 하겠으니 당신이 누군지 좀 알려 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요한 1,22)
  유다인들은 세례를 베풀면서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 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오"(요한 1,23).
  세례자 요한은 자기 자신에 대해 구약에서 예언된 주님에 앞서 온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임을 분명하게 한다. 그들이 왜 세례를 베푸느냐고 따지자,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세례는 그분의 세례에 앞서 베푸는 회개의 세례, 물의 세례라고 대답한다(요한 1, 26a). 그리고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계십니다'(요한 1, 26b)라고 말한다. 그는 메시아께서 이미 와 계심을 알고 있었으며, 이 사실을 처음으로 선포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은 정작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그처럼 애타게 기다렸던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미 와 계셨다.
  이제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태어나실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분은 사제이신 메시아로서 또한 왕이신 메시아로서 우리에게 오시려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야훼의 종'으로, '사람의 아들'이신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따라 회개하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맞이해야 한다. 그분은 곧 오실 것이다. 그분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