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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청 로사리오회 최양업 신부 난파 체류지 첫 미사 봉헌_홍보국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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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4-10-14 조회 1,8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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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청 로사리오회(지도=장상원 신부)는 9일(목) 신시도 새만금상징탑 광장 인근에 있는 최양업 신부 난파 체류지 표지비 앞에서 장상원 신부 주례로 미사를 봉헌했다. 신시도 난파 체류지는 2013년 11월 30일(토) 오후 3시 30분 군산시립도서관 새만금홀에서 호남교회사연구소와 (사)쌍백합 주최로 열렸던 최양업 신부 신시도 행정 기념 학술심포지엄의 과정에서 최종 확정되어 현 표지비가 세워졌다. 조선의 첫 번째 신학생이요,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신부는 1846년 병오박해때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후 여러번 입국을 시도한 끝에 여섯 번째인 1849년 12월에 입국에 성공하여 왕성한 사목활동을 통해 신자 구령과 조선교회 발전에 이바지 하였고, 1861년 공소 방문을 마치고 상경하던 중 문경에서 장티푸스와 과로로 쓰러져 선종하시어, 길의 선교자, 땀의 순교자로 불리고 있다. 신시도와 최양업 신부와의 인연은 1839년 기해박해때 앵베르(라우렌시오), 샤스탕(야고보), 모방(베드로)신부 등 프랑스 선교사 3명과 정하상, 유진길, 조신철, 유대철, 유소사, 정정혜등 많은 조선인 신도가 치명함에 따라, 프랑스 해군성에서 1846년 함대를 파견해 조선의 영의정에게 선교사 살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서신을 전하고, 그 회답을 받고자 1847년 파견한 두 척의 군함에 조선 입국을 시도하던(네 번째) 최양업 부제와 프랑스 선교사 매스트로가 동승하여 통역을 맡았는데, 고군산의 신치도(현재 신시도) 부근에서 좌초되어 40일간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최양업 부제는 프랑스 군인과 함께 신시도에 상륙하여 통역을 맡아 현지 주민과 관리와 접촉하며 비밀리에 신자를 찾아 연락하고자 노심초사하였는데, 때마침 부안 지역 대소공소의 신자를 만나 박해받고 있는 조선의 신자들의 참혹한 생활과 신자의 거룻배 한 척이 최양업 부제가 머무는 신치도에 들어 올 것이라는 귀뜸을 전해 듣고서 입국을 결심하고, “더 큰 희망과 조바심을 가득히 안고” 신자의 거룻배가 오기를 프랑스 함대가 떠날 때까지 애달프게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아 만나지 못했고, 프랑스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로 입국하지 못하고 다시 상해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군산시청 로사리오회에서는 조선인 두 번째 신부이시며 땀의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그 당시 이루지 못했던 간절한 기다림의 큰 신앙의 뜻을 생각하며 감사미사를 봉헌하였고, 최양업 신부의 신시도 행적 등 천주교 유산을 활용한 문화관광의 컨텐츠와 스토리 개발이 필요하며, 군산과 새만금지역의 문화관광부문 발전에 관심을 갖기로 하였다. 최양업 신부는 2009년 5월 한국천주교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에서 로마교황청에 시복자료를 제출한 상태로 2015년에 가경자 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