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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요한 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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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26 08:54 조회182회 댓글0건

본문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한 2,16).

 

오늘은 사순절 제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는 내용이다.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 그리고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황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하고 꾸짖으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다"(요한 2,13-17).

성전을 정화하는 모습은 이미 구약에서 많은 예언자들의 가르침에도 있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집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 크게 꾸짖고 화를 냈으며 성전의 성스러움을 가르쳤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도 예언자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시고 크게 화를 내신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배경을 살펴보자. 공관 복음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마지막 과월절로 나타나는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전도를 시작하시고 얼마 되지 않은 과월절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후에 제자들과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는데, 그곳에서 여러 날 계시다가 과월절이 되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엎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과는 달리 성전을 직접 행동으로 정화하셨다. 성전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성전에 대해서 알아보자.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며, 하느님께서 인간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표징이다. 모든 종교에서 신전, 즉 성전은 인간들의 예배를 받고 신이 베푸는 혜택과 생명에 참여케 하기 위하여 신이 인간들에게 내려온다고 생각되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따라서 성전은 어떤 의미에서 천상적 거주지와 동일시되어 인간이 신들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장소로 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성전에 대한 기원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에 성전 건물은 없었으나 항상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소를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조상 히브리인들은 야훼 하느님께 기원하는 베델(창세 12,8), 브엘세바(창세 26,25), 세켐(창세 33,18-20)과 같은 성소를 가지고 있었고,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하느님의 현현으로 축성된 시나이산도 역시 그러한 장소였다. 나중에 이스라엘은 이동 성소를 소유하게 되는데 이 성소 덕분에 하느님께서는 사막에서 인도되는 백성 가운데 항구히 머무시게 되었다. 그리고 출애굽기 26장과 27장에 보면 장차 건설될 성전을 본 따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된 장막이 하느님께서 백성과 상봉하는 장소가 된다. 장막은 하느님께서 신탁을 내리시는 장소이기에 '증언의 천막'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출애 38,21).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12지파의 공동 성소는 차례로 길갈과 세켐, 그리고 실로에로 이동되었다. 이러한 이동 성소는 하느님의 집으로서 인근에 있는 돌로 지은 가나안 사람들의 신전과 구분하고 있었으며, 하느님께서는 돌로 지은 집보다는 성소와 장막을 더 원하셨다. 당시 돌로 지은 이방인들의 신전들은 신성의 능력을 조종하는 장소가 되어 패륜과 마술 및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곳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윗 왕은 이스라엘 부족을 통일시켜 당대 왕국과 같은 왕정을 수립해 놓고 전통적인 예배 장소를 근대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예루살렘을 정치적 수도로 정하고 그곳에 이스라엘 12지파의 공동 성소를 대신하여 야훼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을 지어 종교적인 구심점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다윗 왕은 이방인들의 신전처럼 돌로 된 성전을 짓고 싶어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시도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고, 참으로 현존하시는 이스라엘의 성소와 장막과 같은 성전을 원하셨다. 성전은 하느님의 현존이 중요한 것이지 돌로 장식된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구약성서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의 의미와 정신을 충분히 살리려고 하였다. 사무엘 후서 7장 4절부터 17절에 보면 다윗이 야훼를 위한 집(성전)을 지을 것이 아니라 야훼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실 것이라고 나온다. 이는 신학적 성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서 '야훼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실 것이다'라는 말은 훗날 메시아에 의해 새롭게 세워질 성전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신 말씀을 예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와 연결되고 있다.

그런데 솔로몬이 즉위하자 다윗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예루살렘에 돌로 된 웅장한 성전이 세워진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해 나온 지 480년,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4년째 되는 해, 둘째 달 시브월에 건축을 시작하였다고 전한다(1열왕 6,1). B.C. 961년을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해로 친다면 성전 건축이 시작된 해는 B.C. 957년으로 잡을 수 있다. 이 성전이 세워진 장소는 다윗 왕이 정했던 '모리아산-성전산'인데 이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12지파들의 옛 공동 성소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면서 진정한 예배가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도 당신 백성들이 마음놓고 당신을 상봉할 수 있는 장소로 허락하시어 '나의 이름이 여기에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이 성전을 받아들이셨다(1열왕 8,23). 이로써 예루살렘 성전은 야훼 하느님을 모시는 이스라엘 신앙의 구심점이 되었고, 하느님의 얼굴을 관상하기 위하여 순례자들이 사방에서 올라옴으로써 신자들의 정성어린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시는 줄 알면서도 성전을 천상적 왕국이 지상에 내려온 모방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서 성전은 이스라엘 예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다하면서도 모호한 점이 많았다. 피상적인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전에서 거행되는 예식이 무의미한 형식으로 타락했고, 또한 이웃 이방인들의 신전처럼 성전 건물에 대한 막연한 애착심이 마술적이며 맹목적인 미신으로 변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빗나간 사고방식에, 예언자들은 성전에 대해서 점점 냉정한 태도를 취했다. 이사야 예언자나 예레미야 예언자, 그리고 에제키엘은 성전에서 거행된 예식이 실속 없는 형식이라고 고발하였고(이사 1,11-17; 예레 6,20), 예식 중에 끼어든 우상숭배적인 요소를 지탄했다. 마지막 단계로 예언자들은 야훼께서 당신이 택하신 장소를 비우시리라 추측하고 민족의 죄에 대한 처벌로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였다(미가 3,12; 예레 7,12-15). 야훼께서는 참으로 당신 현존을 나타내시는 물질적 표지보다 이스라엘이 거행하는 예식의 진실함을 더 중요시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란만장한 민족의 운명과 함께한다. 종교적 쇄신의 시도로 성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긴 했지만, 야훼 하느님께서 모독된 성전을 비우시겠다는(에제 10,4-18) 예언자들의 경고가 실제로 이루지고 만다. 그리하여 솔로몬 시대에 지어진 이 성전은 바빌로니아 느브갓네살에 의해 약탈당하고 B.C. 586년에 파괴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2성전(두번째 성전)의 시기를 맞이한다. B.C. 539년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다음 고레스 2세는 포로들을 풀어주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한다.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에 대해서 정치적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고유의 종교의식을 올려도 좋다는 허락과 함께 고향땅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고향땅을 떠나지 않았던 동포들과 협력하여 옛터에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23년이 지난 B.C. 515년경에 준공한다. 이때에 지어진 성전은 흔히 즈룹바벨 성전이라 불리워 지는데, 이는 건축 기간의 대부분을 즈룹바벨이 유대 사회의 총독으로 재직했던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성전은 거의 500년 동안 예루살렘에 서 있었다. 이는 솔로몬의 성전보다 100년이나 생명이 긴 것이었고, 물론 헤로데의 그것보다도 훨씬 오래 갔다. 훗날 헤로데가 재건축한 성전은 웅장하고 화려하긴 했으나 겨우 1세기(100년)를 지탱했을 뿐이다. 

즈룹바벨의 성전이라고 불리우는 '두 번째 성전' 역시 이스라엘의 불행한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이민족들로부터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B.C. 168년에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성전 제단에서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B.C. 64년에는 폼페이우스가 지성소에 들어갔고, 이듬해에는 크라수스가 성전 보물을 약탈해 갔다. 이로 인해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성스러움에 있어서 큰 손상을 입는다.

그 후에 헤로데(B.C. 37년-B.C. 4년)가 유다의 왕이 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건하고 보수한다. 이 작업은 B.C. 20년에 시작하여 1년 반만에 주요 건물을 준공하고 부속 건물의 건축을 진행했는데, 46년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다. 헤로데는 대대적인 성전 보수작업을 하였지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크나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 성전은 헤로데와 그의 추종자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의해 세속적인 부패의 온상이 되었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성전을 관리하고 다스렸으며 그들의 생활 터전이 되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속화 되고 그들이 성전에서 자행하는 그들의 부패와 관리에 대해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크게 화를 내셨다.

그렇다면 성전의 표징은 이제 끝났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하느님을 모시는 참된 예배 덕분에 회개한 온 인류가 장차 종교의 핵심이 될 성전을 찾아올 것(이사 2,1-4)이라고 하였고, 에제키엘은 민족 복권 시대에 이루어질 성전의 재건을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예언자들은 외부의 호화스러움보다 예식에서 흘러나오는 진실한 경건심을 더 중요시하며 새로운 성전의 시대를 예언하였다.

성전에 대한 예레미야의 경고를 비롯하여(예레 7장) 건물 파괴와 유배 체험은 예레미야나 신명기 저자들이 주장하던 '마음의 종교'가 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보다 영적인 예식의 필요성을 명백히 하였다. 이처럼 예언자들은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영적 성전을 강조하였고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영적 예배, 즉 가난하고 회개하는 마음의 예배는 감각적인 표징과는 무관한 하느님의 영적 현존에 부합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하늘에 계신 야훼께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당신 백성들이 바치는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이제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영적인 성전, 즉 하느님께서 먼 옛날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항상 함께하셨던 성소와 장막과 같은 성전이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지려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분명하게 하셨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따진다.

"그 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다"(요한 2,18).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무슨 권한으로 그러느냐고 대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하시는 새로운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복음서는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데 사십 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요한 2,19-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성전이란 '천상적인 식탁'의 성전이다. 이제 옛 성전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기원 후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그 역할이 다 끝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성전의 시대가 열린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그 실체가 드러난 새로운 성전은 곧 예수님의 몸이시다. 천상의 식탁을 미리 보여준 성체성사는 새로운 성전의 표상이 되고, 주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서 항상 현존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며, 주님과 하나가 된다. 다시 말해서, 성체성사는 이스라엘의 성소요 장막이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전이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