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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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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주일(마르 14,1-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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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3-18 08:49 조회134회 댓글0건

본문

벳파게와 베다니아로부터의 입성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마르 11,10)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다.

오늘은 특별히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면서 주님의 수난사를 통하여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는 날이다. 오늘부터 교회는 한 주일 동안을 '성주간'이라 부르면서 성주간 전례를 거행한다. 주님 구원의 신비가 담긴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이라는 거룩한 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경축하면서 특별히 구원의 신비가 시작되는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성대하게 기념한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예수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산 근처 벳파게와 베다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 보아라. 거기 들어 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묻거든 주님이 쓰신다 하고 곧 돌려 보내실 것이라고 말하여라'"(마르 11,1-3).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올리브산 근처 벳파게와 베다니아에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다. 공관 복음서를 보면 마태오 복음서에는 벳파게에서 입성하신 것으로 나오는데 마르코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벳파게와 베다니아에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것으로 나온다. 이런 상황으로 보아 벳파게는 예루살렘과 베다니아 근처에 있었던 촌락으로 전해진다.

그러면 벳파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잠시 알아보자. 벳파게라는 명칭은 철 늦게 열리는 종류의 무화과를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무화과는 특이하게 먹을 수 있을 때가 되어도 전혀 익은 것 같지 않게 보인다고 하며, 주로 벳파게와 베다니아에서 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벳파게 마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에서만 꼭 한번 나온다. 마르코 복음과 루가 복음에서는 베다니아와 함께 나오는데 벳파게가 먼저 나온다. 이는 예수님께서 동쪽으로부터 오셔서 먼저 벳파게에 당도하셨고, 베다니아는 벳파게보다 예루살렘에 좀더 가까이 있었음을 뜻한다. 오늘날 여러 학자들은 모슬렘 교도들의 마을인 아부 디스(Abu Dis)가 바로 벳파게였다고 말한다. 이 마을은 베다니아의 남동쪽에 있고 감람산, 즉 올리브산 남동쪽 경사지 아래쪽에 있으며 베다니아와는 깊은 계곡으로 분리되어 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이 근방에서 두 제자를 마을로 보내어 감람산(올리브산)으로 타고 올라가실 어린 새끼 나귀를 빌려오도록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다니아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베다니아는 어원이 확실하지 않으나 셈어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의 집' 또는 '아나니아(Ananiah)의 집'을 뜻하는 말로 전해진다. 베다니아는 예루살렘의 동쪽 약 3km의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올리브산의 동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베다니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예식에 참여하셨을 때, 성 밖에 있는 이곳 베다니아에서 유숙하신 것으로 나온다(마태 21,17). 동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사람은 베다니아를 거쳐 올리브산의 산마루를 넘어야 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과월절에 도착하시어 승리에 찬 예루살렘 입성을 하신 바로 그 경로이다. 또한 베다니아는 나병환자 시몬(마르 14,3)과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와 나자로에 관한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요한 11,1-44), 이곳 근처는 예수님께서 최후로 제자들로부터 떠나가신 승천 장소이기도 하다(루가 24,50-51). 오늘날 여기에 사는 회교도 주민들은 이곳을 엘 아지리예(el-Aziriyeh)라고 부르는데, 이는 라자로를 성인으로 모시는 이들이 성인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한다. 회교도와 기독교도 모두가 이 작은 지역에 많은 성소를 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우리 교회에서도 라자로의 무덤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났던 장소,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부어 씻었던 자리를 모두 성소로 정하고 성당을 세웠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처럼 이 두 곳에서 시작하여 이루어진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맞은편 마을로 가서 어린 새끼 나귀를 끌고 왔고, 앉으실 수 있도록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올라앉으시자 수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 위에 펴놓았고,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으며 앞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올렸다. 그들의 환성 소리를 마르코 복음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마르 11,10)

당시에 예수님께 대한 군중들의 환호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 군중들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비극적이고 비참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러했고, 복잡하고 부패한 종교와 정치적인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도 괴롭혔기 때문이다. 지칠대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메시아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걸었다. 예언자적인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그들을 열광케 했으며, 예언자들의 예언이 곧 이루어지리라는 긴박성이 있었기에 예수님께 대한 기대가 더욱 컸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큰 희망을 가져다주실 분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크게 환영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그들이 바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어떠한 모습으로 오시리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초라한 모습은 그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결국 실망과 분노로 가득 찬 그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선동과 함께 예수님을 수난의 길로 내몰았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이셨다. 그들이 기대하고 희망했던 심판관으로서 또는 지상적인 위대한 왕으로서의 모습이 아니어서 크게 실망을 주었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구원은 서서히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지켜보았던 제자들과 복음사가들은 수난사를 통하여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 아들이신 분의 수난사화를 자세하게 전해주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특히 고독한 하느님 아들이신 분의 수난사화를 그려내고 있다.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저녁에 게쎄마니 동산에서 고통스러운 기도를 하고 계실 때 함께 동참해주어야 할 제자들은 무심하게도 잠만 잤고,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어 끌려가실 때에도 제자들은 모두가 도망을 쳤으며,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누구 한 사람 증언해주는 사람이 없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 마저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소'(마르 14,68)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음을 마음 아프게 전하고 있다. 또한 비웃음과 조소 속에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치는 군중들의 외침을 들으시면서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고독한 모습을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의미심장한 말씀을 짤막하게 전해준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르 15,34)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절규이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시어 인간의 눈에는 버림을 받으신 것처럼 아무 변명도 없이 죽으셨지만, 이는 부활을 암시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승리가 선포되는 것이었다. 그분께서 선포하셨던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그분의 죽으심으로 서서히, 그리고 힘있게 시작되고 있었다. 끝으로 복음사가는 백인대장이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예수를 지켜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예수께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숨을 거두시는 광경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말하였다"(마르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