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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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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찬 성목요일(요한 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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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3-25 08:50 조회112회 댓글0건

본문

베드로와 깨끗하지 못한 사람


"그 날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도록 하는데,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은 나 야훼에게 드리는 과월절이다"(출애 12,8.11).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이다.

교회는 주님 만찬 저녁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며, 예수 부활 때까지 인류 구원의 가장 위대한 신비를 거행한다. 이 성삼일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는 가장 거룩한 시간이다. 오늘 교회는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을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시고 제자들에게 영적 양식으로 내어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1고린 11,24) 하신 주님 만찬을 재현하면서 거룩한 시간을 지낸다.

성목요일 저녁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잡히시어 죽으실 것을 아시고 서둘러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유월절' 음식을 앞당겨 드시면서 당신의 살과 피로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요한 13,1).

예수님께서는 이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이것은 내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1고린 11,25) 하셨고, 또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여라"(요한 13,15)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어 무릎을 꿇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셨다. 겸손과 봉사를 나타내는 이 예사롭지 않은 행위는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급히 서둘러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심은 먼 옛날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땅에서 벗어나올 때 있었던 해방의 날을 연상케 한다. 오늘 제1독서에서 그 당시의 일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 날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도록 하는데,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나 야훼에게 드리는 과월절이다"(출애 12,8.11).

그 날 밤에 히브리인들이 서둘러 먹었던 불에 구운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은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업적을 상징하면서 히브리인들 대대손손 과월절 음식으로 기념되었다. 그런데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상징하는 과월절 음식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에 의해서 새로운 파스카 음식인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뀐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어주시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봉사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는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과 시몬 베드로와의 대화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 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합니다' 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하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주님,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요한 13,3-9).

시몬 베드로의 어린이와 같은 깨끗한 마음과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시몬 베드로는 누구인가? 이번 기회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몬 베드로에 대해서 알아보자. 베드로는 안드레아의 형이기보다는 우리 교회의 으뜸이며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수제자로, 그리고 천국의 열쇠를 받은 사람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신약성서는 베드로에 대해서 네 가지 이름을 쓴다. 가장 적게 쓰인 것은 히브리어 이름인 '시메온'으로 대부분 헬라어 사본들에 나타나 있고, 헬라어 이름인 '시몬'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이름은 성서에 자주 나오는 관계로 우리 귀에 익은 이름이다. 또한 오늘 예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신 '게파와 베드로'가 있다. 이들 이름은 둘다 바위라는 뜻이며, 시몬이라는 이름이 복음서에 자주 나타남으로써 그 이름이 그의 본명인 동시에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에 일반적으로 쓰여졌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가 헬라어 시몬이라는 이름을 쓴 것으로 보아 베드로는 갈릴래아 사람으로서 아람어와 헬라어 두 나라 말을 함께 썼던 것 같다. 베드로의 부친은 바요나 시몬(Simon Bar-Jona)으로,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 불렀고, 또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도 불렀다.

성서에서 베드로의 장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결혼했던 사람으로 전해진다.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으며, 동생 안드레아를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바로 그 호숫가에 있는 동리가 그의 고향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들은 그 호수 북서쪽에 있는 가파르나움에서 살았다. 한편 요한 복음서에 "필립보는 베사이다 출신으로 안드레아와 베드로와 한 고향 사람이다"(요한 1,44)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고향은 베사이다로 여겨진다. 만일 베사이다가 고향이었다면 이것은 요한 복음사가가 그들의 본래 고향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확실한 것은 예수님께서 전도하실 당시에는 이들 형제의 집이 가파르나움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고기잡는 '동업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 저녁에 베드로에게 "목욕을 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다. 너희도 그처럼 깨끗하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깨끗한 마음과 정신을 칭찬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깨끗한 마음을 칭찬하시면서 당신을 배반할 유다에 대해서 언급하신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다. 너희도 그처럼 깨끗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 넘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으므로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요한 13,10-11).

가리웃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악마가 이미 가리웃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면 가리웃 유다는 누구인가?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는 복음서 인물들 중에 가장 불가사이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의 뜻과 그의 배경, 그의 성품과 예수님을 배반한 동기, 그리고 그가 죽어간 모습, 이 모든 것들은 현재 전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가리웃(Iscariot)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매우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어 있다. '가리웃 출신, 암살자, 수가 출신, 잇사갈 사람, 예리고 출신, 가짜, 거짓말쟁이, 위선자' 등이다. 그중 가장 통상적인 해석으로는 그의 아버지가 가리웃 시몬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가리웃 출신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리웃은 남 팔레스티나에 있는 카르야테인과 동일한 지역으로 여겨지지만 불확실한 점이 많다. 만일 그를 가리웃 출신으로 받아들인다면 열두 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유다 지방 출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그가 유일하게 유다 출신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호칭되었다는 설도 있다.

예수님께서 유다를 선택하신 것은 그가 크게 쓰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셨기 때문이며, 사실 그는 제자들의 집단에서 중요한 구성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제자들의 회계를 맡았고,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예수님의 곁에 나란히 기대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제자들의 말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동방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한때 제자들의 목록에서 상위 서열(셋째 아니면 여섯째)을 차지했다고 전해진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배후에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는 알아낼 수 없다. 다만 여러가지로 추측할 뿐이다. 유다의 반역과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너무 모호하거나 명료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성서에 의하면 유다는 단순히 욕심이 많고 부정직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칠 수 없는 사람이었다(요한 12,4-6)고 전한다. 그러나 그렇게 흉악한 반역으로 얻게 되었던 돈이 하찮은 소액이었던 것으로 보면 그 엄청난 배신의 동기가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많은 것들을 기대했던 예수님께 대한 실망이나 아니면 유다교의 율법과 제도를 지지했던 열성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과격한 비판과 공격을 보고 배반한 것으로 본다. 그 외에도 예수님께서 그의 원수들과 백성의 원수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거나 혹은 유다의 열정이 점차로 식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을 말하고 있다.

배신의 방법에 있어서도 정확하게 유다가 어떤 정보를 종교 관계 당국자들에게 넘겨주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복음은 제자들과 동조자들, 그리고 지지자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조용히 체포되실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단순히 예수님의 야간 휴식처를 알려주었다(마르14,1-2)라고 전한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다 되신 것을 아시고 만찬을 나누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게쎄마니 동산으로 가시어 조용하게 기도의 시간을 가지신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분께서 이 세상에서 가지신 마지막 시간이었다. 오늘의 만찬이 예수님께는 유다의 배반으로 인하여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 만찬이 된다.

오늘은 성체성사가 제정된 날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으로 뜻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