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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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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금요일(요한 18,1-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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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3-25 08:51 조회128회 댓글0건

본문

대사제 안나스의 음모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오늘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다.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 오늘, 교회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한다. 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고,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 그리고 영성체만을 거행한다. 

오늘 전례는 특히 세상의 심판관들 손에 희생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교회의 믿음을 강조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죽음은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왜 인간은 그분을 인간의 손으로 죽여야 했는지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사야 예언자는 제1독서에서 이미 그분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들 놀았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6-7).

주님이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온갖 굴욕을 받으시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죽으실 것이라는 것을 이사야는 이미 예언하였다. 이는 결코 그분이 지은 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분의 고통과 수난은 우리를 비롯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기워 갚기 위해서였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신 날은 그들의 명절인 과월절-유월절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월절이 되면 먼 옛날 자기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날을 기념하면서 그 날 희생시켰던 어린양을 잡았다. 따라서 요한 복음사가는 구약의 어린양이 희생되는 그 시각에 그분께서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흠이 없는 일년 된 수컷이면 양이든 염소든 상관없다.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십 사일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여서 해질 무렵에 잡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 피를 받아, 그것을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라고 하여라"(출애 12,5-7).

매년 과월절이 돌아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 출애굽 탈출을 재현하면서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고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회상하였으며, 언젠가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보내주시어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자기들을 구원해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였다. 따라서 희생당한 어린양은 구원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그 시각에 희생되신 것이다.

교회는 오늘 그분이 희생당하신 장엄한 수난사를 성대하게 읽으면서 그분의 죽음을 회상한다. 오늘 우리가 읽는 수난사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수난사화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왜 인간의 손에 의해서 죽으셔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고 그 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며 지내신 곳은 키드론 골짜기에 있는 동산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붙잡히신다. 수난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기도를 바치신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동산에 들어 가셨다. 예수와 제자들이 가끔 거기에 모이곤 했었기 때문에 예수를 잡아 줄 유다도 그곳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다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낸 경비병들과 함께 한 떼의 군인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요한 18,1-3).

키드론은 오늘날 와디 시티 미리암이라 불려지는 골짜기를 가리키며, 예루살렘 동쪽 성벽과 올리브산 사이에 가로 놓여 있다. 전승에 의하면 4세기 이후 이 골짜기는 여호사밧 골짜기로 알려져 왔으며, 일찍부터 사람들이 찾아들었던 묘지였다. 이슬람교와 유다교의 구전에 따르면 이곳은 최후의 심판 현장이기도 하였는데 중세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와디 예한눔'이라고 불렀다. 여호아킴 왕이 예언자 우리야의 시체를 던지게 한 '서민 공동묘지'가 이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며(예레 26,23), 또한 시체와 잿더미가 그득히 쌓였다고 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을 것(예레 31,40)이라고 한다. 그리고 벤힌놈 골짜기와 키드론 골짜기가 합쳐지는 지점에 몰록 신과 함께 언급되는 바알 신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번제로 희생시켰다(예레 32,35)는 도벳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 동산에서 군인들에게 붙잡혀 결박당하시어 안나스에게 끌려가신다. 수난사는 이렇게 전한다.

"그 때에 군인들과 그 사령관과 유다인의 경비병들이 예수를 붙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갔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사제 가야파의 장인이었는데 그는 일찌기 유다인들에게 '한 사람이 온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의견을 냈던 자이다"(요한 18,12-14).

예수님께서 재판과 사형선고를 받으실 때, 누구보다도 당시의 실권자였던 대사제 '안나스'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안나스는 누구인가? 그는 유다인 대사제로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사제 무리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서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대사제직은 로마 총독에 의하여 임명되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했는데, 그의 출세 행로를 보면 그는 셋(Seth)의 아들로 태어나 사제가 되었으며, A.D. 7년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그를 대사제직에 임명하였고, A.D. 15년에 발레리우스 그라투스가 대사제직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그는 공적인 지위는 빼앗겼어도 그의 가족을 이용하여 성직자 정치의 가장 유력한 사람으로 큰 세력을 장악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5명과 사위 가야파가 거의 중단되지 않고 대사제직을 이어감으로써 그는 계속 실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교묘한 외교가였다. 그가 계속 영향력을 가졌다는 표지는 그가 공직을 박탈당한 후에도 여전히 '대사제'로 불리웠고, 사제들의 무리가 나오는 곳에는 항상 맨먼저 그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도 '대사제 안나스를 비롯하여 가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그밖에 대사제 가문에 속한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사도 4,6)라고 하면서 그의 이름을 맨먼저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붙잡아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갔다는 말도 이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나이와 능력과 영향력으로 보아 안나스는 실질적인 대사제였고, 가야파는 명목상의 대사제였다. 안나스는 사두가이파에 속했으며, 그 계급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만하고 눈치 빠른 야심을 품은 대단한 부자였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강탈과 탐욕으로 유명했으며, 그들 부의 주요 출처는 성전의 희생 제사물(양, 비둘기, 포도주, 기름 등)을 판매한 이익금이었다. 그것은 모두 올리브산 위에 있는 네 곳의 유명한 안나스 아들들의 매점에서 가져왔는데, 성전 구내에 지점을 두어 큰 축제 동안에 그들 상품에 높은 독점가격을 매겨 매점매석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하느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이라고 크게 화를 내셨는데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따라서 탈무드에 보면 '안나스 가족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독사의 자식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저주가 들어 있다.

비록 복음서에는 뚜렷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하고 죽음에까지 몰고 가는데 큰 책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 가야파가 대사제였지만 늙은 안나스가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린 예루살렘 공회의 명목상 우두머리였고, 실질적 판정권을 가졌었다. 오늘 수난사를 보면 예수님을 잡은 군인들이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간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다. 수난사에 '그는 그 해 대사제 가야파의 장인'이라고 한 점에서 그 사람의 실질적 행사와 그 재판의 성격을 알 수가 있다. 요한 복음의 수난사를 보면 안나스가 예수님께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심문하는 것을 전하는데 공관 복음서의 수난사는 이 재판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안나스의 재판이 비공식적이었고 임시적이었으며 안나스의 개인적인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나서 묶은 채로 대사제 가야파에게 보낸다. 그가 예수님을 결박하여 가야파에게 보낸 것을 보면 예수님을 이미 죄인 취급을 했다는 것이며, 안나스의 재판이 사실상 예루살렘 공회의 정식 재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나스는 그 후의 재판에도 참석했음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야고보를 돌로 쳐죽이도록 한(A.D. 62년경), 그의 다섯 번째 아들 안나스가 대사제직을 계승할 때는 생존해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해서 안나스 일가의 대사제들에 의해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형의 사형선고를 받고 죽으신다. 

오늘 요한 복음의 수난사 전반에 흐르는 질문은 '예수님께서는 누구이신가?'라는 것이며, 그의 대답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다'라는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수난사 첫 머리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인들이 예수님의 신적인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치다가 넘어졌음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인간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셨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교회와 세상 안에 주님의 현존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죽으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더욱 깊게 해야 한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 번 열지 않고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