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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요한 1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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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4-15 08:56 조회54회 댓글0건

본문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14-15).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착한 목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목자와 양, 그리고 착한 목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요한 복음사가는 아주 중요하게 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착한 목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지난해(가해-부활 제4주일)에 이어 다시 한 번 주일 복음으로 묵상하게 한다. 지난해에는 목자가 상징하는 성서적 의미와 예언자들의 예언을 알아보았는데, 금년은 특별히 착한 목자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실 예수님 시대에 '목자', 즉 양치는 사람에 대한 성서적 의미는 그리 풍부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양치는 사람은 당시에 시대적으로 율법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 특히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치는 사람들을 도둑이나 살인자로 취급하였다. 그들의 율법주의가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목자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목자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를 엎으시고, 양치는 사람들을 세리나 죄인들처럼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작은 자'들 속에 넣으려고 하셨다. 루가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태어나실 때에 목자들이 맨 처음 찾아와 찬양을 드리면서 기쁨을 나누었다(루가 2,8-20)는 것은 이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성서의 전승을 충실히 따르시는 예수님께서는 자비가 충만하신 당신의 마음을 잃어 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으로 묘사하셨다(루가 15,4-7). 또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시어 인자로이 보살피시는 예수님의 마음(마태 9,36)은 모세가 바라던 목자가 그분 안에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세는 야훼 하느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그들의 앞장을 서서 드나들 사람, 그들을 이끌고 나가고 이끌고 들어 올 사람을 세워 주십시오. 야훼의 회중을 목자 없는 양떼처럼 버려 두지 마십시오"(민수 27,17).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잃어 버린 양을 위해 당신이 파견되었음을 의식하고 계셨다. 아무튼 착한 목자에 대한 희망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으며, 또한 그 사목직을 제자들과 교회 안에서 일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위임하셨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러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과 말씀을 잘 전하고 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목자가 아닌 삯꾼은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떼는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요한 10,11-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로 비유하신다.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목자로 자처하는 하느님의 종들은 많았지만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목자는 없었다. 다윗 왕 이후 모든 왕들은 하느님의 양떼를 돌보고 보호하는 목자였으나 실제로 그들은 자기 사명에 충실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은 목자가 아닌 삯꾼들이었기 때문에 양들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고 양떼는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예레미야는 목자가 아닌 그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이 저주받을 것들아, 양떼를 죽이고 흩뜨러 버리는 목자라는 것들아, 야훼의 말을 들어라. 내 백성을 칠 목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 내 양떼를 돌보아야 할 너희가 도리어 흩뜨려서 헤매게 하니, 너희의 그 괘씸한 소행을 어찌 벌하지 않고 두겠느냐!"(예레 23,1-2)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양떼를 돌보고 보호해야 할 목자들의 그릇된 소행에 대해서 책망하고 경고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데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14-15).

당신께서 하느님의 신성을 지니고 계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양들이란 하느님의 백성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양떼와의 관계를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진실로 양떼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의 참 목자이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야훼 하느님과 같은 착한 목자이심을 드러내신다. 또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이심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수난을 암시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에 대한 암시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양떼의 범위를 넓히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 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 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요한 10,16).

성서에 야훼 하느님의 양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목자들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우리 안에 있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이스라엘의 사고방식에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류의 하느님이심을 파격적인 말씀으로 언급하신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인류는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질 새로운 공동체를 암시하시면서, 하느님의 양떼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형성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착한 목자의 수난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요한 10,17-18).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당하실 수난은 하느님의 뜻이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착한 목자상을 교회 안에 드러내신다. 예수님의 착한 목자상은 당신 제자들에게 반영되고 나아가 교회 공동체의 사목자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양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