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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일(요한 1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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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4-29 10:21 조회44회 댓글0건

본문


사랑이란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오늘은 부활 제6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 가르치신다. 이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지난주에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고 하신 뒤에 바로 이어서 하신 말씀이다.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사랑의 계명이다. 오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계명은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계속 당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찬을 나누시던 날 밤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식탁에 앉으셔서 빵을 나누신 뒤에 '새 계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이라고 하시면서 마지막 유언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나서 '길과 진리와 생명, 그리고 성령의 약속, 예수님의 평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포도나무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때에 다시 제자들에게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 말씀이 오늘 복음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 사랑에 대한 정의와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하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사랑은 그렇게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사랑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본받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1요한 4,10).

요한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당신의 아들까지도 제물로 바치신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사랑에 대해 당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요한 15,9-10).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말씀하시는데, 그 사랑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제자들을 사랑해 왔다고 하신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라는 말씀은 신약성서에 담긴 계시의 정상이요, 핵심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은 성서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다. 천지창조 이야기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넘치도록 풍부한 생명을 주셨는데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에서 그 사랑이 엿보인다. 그리고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에도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자비하심과 사랑으로 구원의 약속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이교도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축복해주셨고 이사악과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어 당신 사랑 안에 두셨다. 그리고 그 후손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 인도하시고 당신의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시어 영원히 당신 백성으로 남게 하셨다. 그 후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못된 짓을 하면서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에도 당신의 종들을 끊임없이 보내셔서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라셨으며, 결정적으로 우상숭배에 기울어졌을 때에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구원의 희망을 주셨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언자들도 하느님의 충실한 친구로서 하느님께 간택되고 개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그 직무 때문에 가끔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기쁨으로 채워주셨다. 유배 이후 시련을 통해 정화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생활이 사랑의 대화임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일일이 말씀을 건네신다는 것도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구약시대 말기에 그리스도의 내림이 가까워지면서 경건한 유다인들은 성서를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자각하였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약에 대한 성실하심과 선하심, 은혜로우심과 자비로우심 등을 찬미하게 되었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이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극치를 이룬다. 예수님의 강생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며 업적이었다. 자비하심과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긴 약속과 예언 끝에 당신의 독생성자를 통해 당신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 깊이 체험하셨다. 그래서 완전히 자유롭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신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순명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남김 없이 주시기 위해서 당신 자신이 고통과 수난을 받아들이신다. 사람들로부터 온전히 외면당하시고, 지극한 시련과 하느님도 침묵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 깊은 고독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용서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남김 없이 본받으신 분이시기에 제자들에게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사랑이 곧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계명을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계명은 바로 앞서 말씀하신 '새 계명'(요한 13,34)으로써,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며, 서로 사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이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는 다른 하느님의 사랑에서 오는 참 기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하느님의 사랑에서 오는 참 기쁨을 누리고 계셨으며, 당신의 수난을 앞두시고 하느님의 사랑에서 오는 기쁨을 간직하셨다. 진실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을 누리셨으며, 예수님께서 누리는 사랑에서 오는 기쁨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고자 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요한 15,12-15).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따르도록 가르치시며,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당신의 사랑을 본받도록 하신다.

끝으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실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 15,16-17).

예수님의 제자들이 스승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부르시어 당신의 제자들을 택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다. 이 응답이란 예수님의 모든 것, 죽음까지도 함께한다는 전인적인 응답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으라고 하시면서 파견자로서 명하신다. 열매는 구원의 절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