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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합 제84호(봄) 신앙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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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4-03-07 09:59 조회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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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

 

예수님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 8,5-8)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비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에게는 예부터 아주 친숙한 모습 곧 밭을 거닐며 씨를 뿌리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모습에 다시 한번 깊은 관심을 두고, 중요한 물음을 집요하게 제기해 봅시다. 주님께서 틀림없이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은총이 영혼 안에서 작용하는가?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을 인간의 마음속에서 창조하시고 활동하시는가?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공허한 말이 아닙니다. 충만한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이 들려주는 것처럼, 교회에 의해 선포될 때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일찍이 세상을 전능으로 다스리시는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동일한 말씀을 우리 영혼에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의 효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주 미비한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아니 더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오랫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거의 변하지 않고 여전히 똑같은 것은 어찌 된 일인가?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왜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가? 하느님의 말씀이 망치질처럼 우리의 영혼을 내리쳐, 우리 안에 있는 자만과 태만과 교만 등의 모든 장벽을 무너트리어 진리를 세우고, 영혼을 전적으로 하느님의 빛으로 인도하고, 양심을 그분의 깊음에 이르기까지 뒤흔들어 놓고, 성령의 불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는 여기지 않는가?

이에 대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 가끔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자주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다르다”.

쟁기가 밭을 갈아엎을 때 씨 뿌리는 사람이 일어나 앞치마를 두르고 날렵한 동작으로 한 움큼의 씨를 축축한 땅에 뿌리는 것을 그대는 본 적이 있습니까? 작은 회색빛 낱알들이 고랑에 떨어질 때 그 소리가 크게 들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낱알들은 가볍게 떨어지고 부드럽게 날립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고요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곤 써레질을 하고 고랑이 덮입니다. 비가 내리고 땅이 편편해집니다. 모든 것이 고요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그 작은 낱알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생명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풍성함이 있습니다. 물론 생명은 침묵하며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생명이 존재하고 활동합니다. 그 낱알은 한동안 고요하게 놓여 있다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곧 낱알은 자기 자신을 열고, 싹을 아주 연약하게 틔웁니다. 낱알은 고요한 땅속에서 꿈틀거리고 발아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싹은 점점 표면으로 솟아오르고, 마침내 지표면을 뚫고 솟아오릅니다. 싹은 점점 위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고요한 활동은 이내 완성됩니다. 이삭이 돋아나고,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이 활동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들 사이에서 흥미를 끌고 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유별난 유행어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복음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조용히, 분명하게 그리고 꾸밈없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호통을 치시고 불끈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주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대부분 씨 뿌리는 사람이 고랑에 씨를 뿌리듯이, 고요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떨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대단히 새로운 표현으로, 깜짝 놀라운 방식으로 선포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ㄱ)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때 교회에 맡겨 주셨던 것을 교회는 성실하게 그대로 이행합니다. 그 외에 또 다른 어떤 것을 교회는 이행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씨 뿌리는 사람이 일어나 씨를 뿌렸던 것을 그대로 이행하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참으로 귀중한 유산을 조심스레 아끼며 아무것도 망가트리지 않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마음의 소란을 느끼지 않습니다. 급격한 효과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밭에 가벼운 씨가 떨어지듯이, 영원한 거룩한 말씀이 자기 영혼에 떨어지는 것을 느낄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충만한 신적 생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씨는 순수한 의지와 선한 말과 경건한 행동으로 소중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생각과 양심과 정신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런데 만일 말씀의 싹이 트지 않고 발아하지 않는다면, 이는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잘못은 마음의 토양에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그렇게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 이유는 씨에 있지 않습니다. 씨에는 하느님의 생명이 충만히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주님은 비유에서 말씀하십니다. 씨는 그처럼 귀중하지만, 길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발에 짓밟힙니다. 그리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씨는 숨겨진 생명력을 충만히 지니고 있지만 단단한 돌밭에 떨어진다면, 그 생명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씨에서 뿌리가 내려도 뿌리는 영양분을 찾지 못하고, 줄기는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줄기는 싱싱하고 힘 있게 자랄 수 있지만, 들판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처럼, 줄기가 덤불과 함께 자랍니다. 덤불은 줄기에 빛과 공간을 차단하여 결국 줄기는 쇠약해지고 말라죽게 됩니다.

하느님의 씨앗이 우리 영혼에 떨어질 때도 이와 같습니다. 그 씨앗에는 충만한 힘이 있으며, 마음의 평화와 기쁨, 영원한 생명을 위한 활동도 충만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 영혼에 폭력을 행사하시지 않습니다. 태양이 경작지를 강요하지 않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기꺼이 응답하는 그만큼 그분은 우리 영혼을 차지하십니다.

우리 인간이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관심이 없다면, 말하자면 우리가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거나 받아들이려는 각오 없이 듣는다면, 거룩한 말씀은 단단한 길에 떨어진 씨와 같습니다. 하느님은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절대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폭력으로 다스리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그 마음을 그대로 놔두십니다. 그리고 원수가 찾아옵니다. 원수는 우리의 기억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쉽게 거두어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잊히고 헛되게 됩니다.

계속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말씀을 듣고 감동하여 큰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감정마저 느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환상일 뿐입니다. 이후에 일이 진지하게 되자마자, 말하자면 결심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게 되자마자 어려움과 조롱이 들이닥치면 모든 것이 함께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축제복을 차려입고 진지한 열정이 넘치는 주일만이 아니라,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월요일에도, 일상의 누적된 피로로 주일에 느낀 열정과 감동이 점점 식어가는 주중에도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모든 것이 쉽게 무너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말씀이 모래밭에 떨어진 셈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빨리 뿌리를 내리지만 뼈대를 세우지 못하여 힘이 없습니다. 말씀은 이내 시들고, 앞선 많은 결심과 더불어 바싹 메마른 풀처럼 됩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자초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말씀의 씨에 좋은 땅을 제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또한 받아들입니다. 그는 말씀에 대해 “맞아, 그렇지, 그래야만 하지!”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과 재화에 대한 걱정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욕심이 그를 압박하고, 쾌락이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악한 마음과 비방과 증오가 그를 마구 흔들어놓습니다. 이러한 모든 덤불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여린 새싹은 질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의욕을 잃고 결국 말씀을 놓아버립니다. 그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가까이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가 진지한 개척을 통하여 곧 자기 극복을 통하여 하느님의 새싹에 자유로운 공기를 마련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새싹을 공들여 보호하고 기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마음이 이 세상 것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충만한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은 땅에 떨어진 씨앗처럼 움직이고 자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에 좋은 땅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부드럽고 깊고 비옥한 땅인 선한 마음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습니다. 아주 고요하지만 풍성하게, 값진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하늘의 씨에 그런 땅을 마련해 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땅은 부드러워야 하고, 씨를 깊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때 곧 강론 때 취할 자세입니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저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거기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인간적인 것에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는 겸손과 사랑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강론 전에 다른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모아 진지하게 성령께, 영혼의 바닥을 부드럽게 해달라고 노래로 간청해야 합니다. 노래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시여, 당신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 마음에 오십시오.” 진지하고 절실하게 간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실하게 귀 기울여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거룩한 말씀에 우리 영혼을 열어야 합니다. 밭의 깊은 고랑처럼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함께 느끼고, 하느님께 인도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부차적입니다. 정말 중요한 분은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씨를 뿌리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경청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부드럽고 비옥한 땅속에 뿌려집니다.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제대로 뿌려집니다. 그러면 어떤 새도 씨를 물어갈 수 없습니다.

귀 기울여 들었던 말씀을, 이제 그대는 동행하기 바랍니다. 오후에 그 말씀을 묵상하고, 이에 대해 집에서 다른 사람과 나누기 바랍니다. 그대는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하여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그대에게 이렇게 묻기 바랍니다. “말씀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대는 이로부터 한 주간의 계획을 세우고, 항상 그 계획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녁때 그대 자신에게 이렇게 묻기 바랍니다. “나는 그 계획을 지켰는가?” 다음 날 아침에 그 계획을 다시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그 계획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그대가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은 그대 안에 뿌리를 깊게 내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의 씨는 메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결심을 괴롭히는 유혹의 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때 느슨한 마음을 갖지 말고 그 결심을 꼭 붙들기 바랍니다. 만일 무관심이 찾아와 말씀의 뿌리가 점점 부식하게 되면, 나쁜 실례나 비웃음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하고, 그들에게 맞서고 버티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의 새싹은 질식하지 않습니다. 확고한 상태와 자유로운 빛을 유지하며 자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하루빨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씨에서 줄기가 나오고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마르 4,28 참조). 하룻밤 사이에 하느님의 말씀이 영혼에 뿌리를 내리고, 결심이 좋은 업적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인 ‘좋은 땅’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좋은 땅은 곧 ‘인내로 열매를 맺는 땅’입니다. 실제로 참되고 좋은 것은 서서히 자라납니다. 땅은 천천히 비옥해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서서히 근절됩니다. 하느님의 씨는 오직 고요하게 그리고 알아차릴 수 없이 마음속에서 자라고 무르익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씨가 무르익을 때 그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되려 우리는 모든 장애물과 완고한 마음을 느끼고, 가끔 용기를 잃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성실하게 일하고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억압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씨는 누군가 재촉하고 거침없이 서두르면 빨리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를 입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도 마음속에서 그러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시간을 주기만 하면, 자신의 때가 되었을 때 자랄 것입니다. 그대는 그대의 의무를 이행하고, 그대가 하기로 계획했던 일을 아주 소박하게, 힘닿는 데까지 하기 바랍니다. 만약 실패하면,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그런 겸손은 “일이 잘되지 않았구나, 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지,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겠지.”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은 마음속에서 고요하게, 꾸준히 자랍니다. 그리고 영혼의 밑바닥에 거룩한 말씀의 뿌리가 깊이 내립니다. 그 뿌리는 의지 속으로 뚫고 들어가 선하고 단단한 습관을 일구어냅니다. 그리고 말씀은 마음 전체에 스며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말씀의 힘은 모든 것을 완수하고 이루어내게 합니다. 거룩한 뿌리는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 선한 일에 대해 아름다운 기쁨을 꽃피웁니다. 결국 때가 되면 선행이 싹트고, 하늘의 창고에 값진 열매를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