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시면,

많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2024.05
19
메뉴 더보기

교구

보도자료 목록

SNS 공유하기

최여겸 순교터 개갑장터에 성지 조성[가톨릭신문 2009-10-25]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1-07-07 조회 1,970회

본문

최여겸 순교터 개갑장터에 성지 조성[가톨릭신문 2009-10-25]
 최여겸 순교터 개갑장터에 성지 조성
전주교구 고창본당·고창군, 2014년 완공 목표로 추진

[사진설명]
2014년 완공되는 개갑성지 조감도순교자 최여겸(마티아·1763~1801)이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개갑장터(현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190 일대) 자리에 순교성지가 조성된다.
전주교구 고창본당(주임 김병희 신부)과 고창군은 2014년까지 3단계에 걸친 ‘최여겸 마티아 순교터 성지조성 개발계획’을 세우고 최근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갔다.

고창본당 성지개발추진위원회(위원장 김용관)에 따르면, 1단계로 올해 말까지 전체 부지 1만4814㎡ 중 이미 매입한 6980㎡ 외 7834㎡를 추가 매입하여 주차공간을 마련한다. 2단계로 2012년까지 순교 현양탑과 최여겸 동상, 야외 제대, 대형 십자가 타워 및 성모상 등 기본 조형물이 설치된다. 3단계로 2014년까지 산책로와 쉼터, 공원이 들어선다. 고창군은 이에 앞서 지난 2004년 6월 개갑장터를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한 바 있다.

무장고을과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한 개갑장터는 조선시대 당시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 구한말 의병들의 물자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일제로부터 미움을 사고 폐쇄돼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최여겸은 1763년 개갑장터 인근 갑촌에서 태어나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 들은 뒤에는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흥덕과 고창, 영광, 함평 등지에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28명을 입교시켰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그는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 7월 19일(음력) 개갑장터에서 참수형을 받고 38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현재 ‘하느님의 종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에 포함돼 시복시성을 위한 교황청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김병희 신부는 “최여겸 순교자의 순교터인 개갑장터는 한국 교회 ‘순교의 남방한계선’이란 점에서도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깊다”며 “성역화가 추진되면 인근 청보리밭과 동학 농민혁명 발상지, 고인돌 공원, 선운사와 ‘성지순례’ 및 ‘관광’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서남해안 지역 대표적인 사적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고창본당은 최여겸 순교자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10월 18일 고창성당에서 무장읍성, 개갑장터에 이르는 23km 구간을 도보로 순례했다.

※도움주실 분 063-564-2044 고창본당
곽승한 기자( paulo@catime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