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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권상연성당 성물 제작한 정미연 화백[가톨릭신문 20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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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8-31 조회 1,559회

본문

"처절한 순교 기억하는 치유 공간되길”

전주 권상연성당 성물 제작한 정미연 화백

성당 내 모든 성물 제작 맡아
암 투병 중에도 투혼 불태워
“십자고상에 가장 큰 애착 느껴”

발행일2023-09-03 [제3358호, 16면] 

전주 권상연성당 성물을 모두 제작한 정미연 화백. 뒤쪽으로 제대 뒤 벽면의 십자고상이 보인다.


“남편이 그랬어요. ‘이게 다 가문의 영광’이라고. 평생 성화를 그리는 일을 했는데, 한 개인이 한 성당의 성물을 모두 맡아 제작하는 일은 드물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기도 하고. 평생 주님의 일을 했고, 첫 순교자 성당이니까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어요.”

서양화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화백은 9월 2일 봉헌된 전주 권상연성당(구 효자4동성당)의 모든 성물을 제작했다. 1년여 만에 제대 십자고상부터 성수대, 성당 안과 마당의 십자가의 길, 양쪽 벽면과 성당 입구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성당의 모든 성물이 그의 손으로 완성됐다.

권상연성당 성물 봉헌은 주임 박상운(토마스) 신부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정 화백과 박 신부는 7년 전 박 신부가 전주교구 여산성지 담임일 때 인연을 맺었다. 정 화백은 박 신부의 부탁으로 성지에 성모칠고상을 봉헌했고, 이후 정 화백은 성지를 위해 십자가의 길 등 다양한 성물을 제작했다. 정 화백은 “박 신부님은 미적 감각도 있고 성물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신다”면서 “예술적인 면에서 코드가 잘 통했다”고 말했다.
 

권상연 야고보 조각상.권상연본당 제공
“신부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프랑스 방스에 로사리오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의 그림을 마티스가 모두 그려 유명해졌다. 우리는 왜 이런 발상을 못할까’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신부님께서는 ‘제가 성당을 짓게 되면 그런 멋진 일을 한번 해봐요’라고 했어요. 지나가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뤄진 거예요.”

여산성지에서 전주 효자4동본당으로 부임한 박 신부는 조립식 임시 성당이었던 효자4동성당 새 성당 건축을 기획했다. 박 신부는 지난해 6월 성당 설계도를 들고 정 화백을 찾아왔다. 정 화백은 “설계도에 어떤 내용의 작품을 어디에 설치할 지까지 다 들어있었다”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있었고 만들어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 제안을 수락하기에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대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 화백이었지만, 바로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3월 그는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초기에 발견해 수술과 함께 항암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의 격려 속에 작업을 시작했다. 작품 하나 하나 완성을 하며 큰 성취감을 느꼈다. 정 화백은 “아프다고 이 작업을 피했다면 제 건강은 더 나빠졌을 것 같다”면서 “작업을 하며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당 성물 작업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순교’를 주제로 성당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만들 때였다.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고, 항암치료 후 정기적으로 받아왔던 혈액검사에서 암 수치가 갑자기 높아졌다. 다시 원인을 찾는 검사가 이어졌다. 간에 작은 암세포가 발견됐다. 재발한 것이다. 성당 성물 작업을 마무리하려면 석 달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병원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부위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암 수치는 떨어졌지만, 항암치료를 또 해야 했다. 췌장암 수술 이후 이미 12차례나 항암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작가는 두려웠다. 다시 항암치료를 받으면 그냥 죽을 것 같았다. 정 화백은 성당에서 가까운 고창에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지내면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전주 권상연성당 십자고상.
“병원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나와버렸어요. 자연 속에서 몸을 추스르며 자연 치료를 받고 싶었던 거죠.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았어요. 신앙인으로서 죽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가는 것이잖아요?”

정 화백은 권상연성당 성물 중 십자고상에 가장 큰 애착을 느낀다고 밝혔다. 십자고상은 제대 뒤 벽면의 십자가 모양 창문 앞에 떠 있게 설계됐다. 십자가는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을 상징하고 십자고상은 성당 안과 밖을 잇는 구심점이 된다. 정 화백은 “비르지타 성녀의 예수님 수난 15기도를 바치며 십자고상을 구상했는데, 기도문에 나오는 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가신 예수님을 표현하려고 했다”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그분의 사랑을 느끼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주교구는 지난 2021년 한국교회 첫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윤지헌(프란치스코) 등 세 복자 유해 발견을 기념해 효자4동성당을 ‘첫 순교자 기념성당’으로 지정했다. 또 봉헌식을 거행하며 이름도 권상연성당으로 바꿨다.

정 화백은 “한국교회 첫 순교자를 기념해 세워진 이 성당에서 처절한 순교를 통해 우리에게 신앙을 남겨준 순교자들에게 감사를 느끼길 바란다”면서 “권상연성당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아픔을 느끼고 함께 부활로 나아가는 치유의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