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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첫 교리당 초남이 성지에 복원[평화신문 200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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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01-22 조회 1,743회

본문

 호남 첫 교리당 초남이 성지에 복원
113평 터에 한옥 형태 50여평으로 조성

호남 천주교회의 발상지인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이 성지’(지도 김환철 신부)에 신유박해 순교자 유항검·관검 형제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전라도 지역에서 최초로 운영했던 ‘교리당’이 23일 복원됐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주례로 거행된 이날 교리당 축복식에는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의 신자가 참석, 교리당 복원을 축하했다.

이날 복원된 교리당은 대지 113평에 종탑과 방 5개 딸린 한옥 형태의 50여평으로 조성돼 있고, 종탑에는 ‘천주교 교리당’이라는 커다란 현판을 내걸었다. 또 교리당 입구에는 유항검 형제가 교리당을 운영할 당시 사용했던 샘인 ‘정지샴’을 복원,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단장해 놓았다. 교리당 복원 작업은 금년 3월 중순에 교리당 터를 매입한 후 바로 착공에 들어가 3개월 만에 완공했으며, 복구 자금은 서울 숲정이 회원을 비롯한 순례자들의 봉헌금으로 모두 충당됐다.

전주교구는 초남이 교리당이 복원됨에 따라 이곳에서 전주교구내 각 본당 예비신자들이 세례성사를 받기 직전 1박2일 일정으로 옛「교리문답」책으로 천주교 교리를 배우며 순교자들의 삶을 체험케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아울러 교리당내에 ‘성체조배실’을 마련해 첫영성체 후 동정을 서원했던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의 삶을 묵상하는 피정 프로그램도 실시할 계획이다.

초남이 성지는 ‘호남의 사도’로 불리는 순교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부인 신희, 동정부부로 유명한 유항검의 맏아들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석(요한), 유항검의 동생 유관검과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 등 유항검 일가가 살았던 생가터. 1801년 신유박해로 유항검 일가가 모두 순교하자 유항검의 생가는 ‘파가저택’(破家저택, 큰 죄를 지은 죄인의 집을 헐어 없애고 그 터에 물을 대어 못을 만들던 형벌) 조치를 받아 저수지로 변하면서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

초남이 성지가 개발된 것은 1985년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유항검 생가터인 ‘파가저택’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교구 총대리였던 김환철 신부(현 초남이 성지 지도 신부)와 호남교회사연구소 김진소 신부가 유항검과 사돈간인 이우집의 문초기록과 지역 토착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파가저택’ 지를 확인했다. 또 김진소 신부는 1977년에 발견된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관측 문초기록인「사학징의」의 내용을 토대로 유항검 생가에서 450m 쯤 떨어져 있는 ‘교리당’ 터를 확인, 고증했다.

이날 축복식을 주례한 이병호 주교는 “순교자들의 숨결이 서린 성지를 잘가꾸고,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아 복음을 통해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이신 주님을 따르자”고 강조했다.

김환철 신부는 “이번 교리당 복원으로 유항검 일가에 대한 역사 고증은 어느 정도 마무리 하게 됐다”며 “앞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해 순교자들의 높은 신심을 배워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사진설명)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와 교구 사제단이 23일 초남이 성지에서 교리당 축복식에 앞서 신자 300여 명과 함께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순교자 현양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