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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책]이병호 주교의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평화신문 200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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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7-07 조회 1,5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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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책]이병호 주교의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평화신문 2003-06-08]
 무한에 대한 갈망 충족
사제의 길을 향해 가던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제단, 봉헌, 제물을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성령의 불, 영성체, 기도는 절대자, 무한자, 영원한 생명, 사랑 등의 말로 표현되는 하느님과 그분께 드리는 제사에 걸맞은 크기로 확대되어 무한에 대한 내 영적 갈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작은 글을 통해서, 또 번역서를 통해서 알기 시작한 이 글의 내용 가운데 가장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미사를 지낼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떠오르는 상념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사제로서 제병으로 쓰일 빵을 성반에 받쳐들고 이 기도를 드릴 때, 내 마음의 눈에는 밀씨가 땅에 뿌려지고 난 후, 비와 이슬을 받아 싹이 터서 땅속에 흩어져 있던 양분을 끌어올리고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나다가, 이삭이 패일 무렵 바람이 불어 수정이 이루어져서 열매가 맺히고 점차 익어 가 마침내 빵의 모습으로 여기 있는 밀의 일생이 한꺼번에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을 우주 전체의 움직임 속에 넣고 보면 지금 내 손에 받쳐진 조그만 빵 한 조각이 실상은 하늘과 땅, 자연과 사람이 총동원되어 이루어낸 산물임을 쉽게 깨닫는다. 술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념 속에서는 땅덩이 전체가 제단이요, 창조주의 안배에 따라 거기 움직이고 자라며,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제물이 될 뿐 아니라, 내 손으로 바쳐지고 있는 작은 빵과 한 모금의 술이 실상은 이 거대한 제물의 한 조각으로서 그 전체를 대표하게 된다. 그런데 자연은 그것이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실제로 전 창조계를 대표하는 인간에 비할 수는 없다. 저자의 상념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낮 동안의 활동과 저녁의 수면, 적극적 행위와 수동적 당함으로 이루어지거니와, 확장과 수축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심장 박동으로도 표현되어, 서로 보완하는 이 두 측면 모두를 통해서 사람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그리스도의 자기봉헌을 따라 그것을 미사로 올려 드린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미사는 무한하신 하느님께 어울리는 제사로서의 장엄함과 크기 그리고 깊이를 지니게 된다. 사제는 이런 의미로, 세상 전체의 적극적 행위-노동과 수동적 당함-수고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떼이야르 드 샤르댕 지음/김진태 옮김/가톨릭대 출판부/5000원)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