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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 故 박성운 베네딕도 신부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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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3-11-20 조회 1,3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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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산증인 … 사제 사표 큰 족적 11월 17일 오전 10시 중앙성당서 애도 속 장례미사 및 고별식 지난 11월 14일 성 바오로 복지병원에서 향년 86세로 그리던 하느님의 품에 안긴 故박성운(베네딕도)신부의 장례미사 및 고별식이 11월 17일 오전 10시 전주 중앙성당에서 자리를 가득 메운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유족, 일반 신자들의 깊은 애도 속에 이병호 주교와 전 전주교구장과 마산교구장을 지냈던 박정일 주교의 집전으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이날 미사 강론에서 이병호 주교는 “사제 서품 후 60년 가까이 본당사제로서, 후배 사제를 양성하는 영성 지도신부로서 철저하게 소임을 다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제직의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개선하신 신부의 노고와 업적을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빌었다. 우리 교구의 가장 어른 신부로서 이에 걸맞게 모범적인 삶을 사신 故 박성운 신부는 1917년 3월 19일 익산군 용안면 동지산리에서 태어나 1944년 성유스띠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12월 23일 사제 수품을 받고 하느님의 충실한 사도요 충직한 종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해 정읍 시기동 성당 주임신부를 시작으로 둔율동, 부안, 중앙, 쌍교, 임실, 함열, 서학동, 진안, 팔마 등 10개 본당에서 왕성한 사목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중앙 성당 등 4개 성당을 신축하는 등 어려운 일을 척척 처리하는 뛰어난 수완과 앞날을 준비하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해결사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고 대쪽같은 성품으로 매사에 너무 엄격하고 철두철미한 나머지 ‘호랑이 신부’라고 불려지기도 했으나 속마음은 너그럽고 손난로처럼 따스한 분이셨다.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 사목현장을 떠나 잠시 휴양을 한 후 1983년 광주 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신부로 새로운 분야에 들어서 손주같은 신학생들이 외로움에, 어려움에 방황할때마다 때론 친구로 때론 엄한 아버지로 때로는 자상한 할아버지로서 올바른 길을 안내해주는 길라잡이로 다가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이들 신학생들이 흔들림없이 훌륭한 사제 성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996년 은퇴하신 후 투병생활로 편히 쉬셔도 힘겨운 상황아래서도 항상 기도하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찾아오는 신자들의 신앙 상담을 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삶의 불꽃을 지피우신 故 박성운 신부는 자신에게, 신자들에게, 신학생에게, 나아가 하느님에게 철저한 삶이 어떤 것인지 시범을 보여주시면서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당당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개선하셨다. |홍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