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켓
드라마
1964년도 제작
148분
전체 관람가
감독 | 피터 글렌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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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리처드 버튼, 피터 오툴 |
줄거리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 양친은 노르만인으로 아버지는 런던의 상인이었다. 캔터베리 대주교 시어볼드를 섬기고, 1154년 수석 조제에 등용되었다. 이듬해 대주교의 추천으로 헨리 2세의 상서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상서부가 정부의 중추기관이 된 것은 베켓의 역량에 의한다. 한편 시어볼드의 사후, 왕의 추천으로 62년 대주교로 서게 되었다. 그러나 왕의 기대에 반해서 그는 대주교에 취임하는 즉시 상서부 장관을 사임하고, 교황이 지도하는 〈교회의 자유〉의 투사로 급변했다. 교회의 독립은 왕과 심한 대립을 일으키고, 베켓은 부득이하게 64년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었다. 6년간의 망명후, 민중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아서 대주교좌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친국왕파 주교 등을 파문했기 때문에, 격노한 왕에게 살의를 품고, 4명의 기사가 70년 12월 29일 베켓을 캔터베리 대주교좌에서 살해했으며 반향은 전유럽에 미쳐서 교황은 그를 열성(列聖)했다. 베켓의 살해는 후에 T.S. 엘리엇에 의해서 『사원의 살인』(1935)으로서 극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