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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첫 순교자 유해 발굴[가톨릭신문 202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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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9-28 조회 6,0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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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첫 순교자 유해 발굴] 특별기고 - 세 분 복자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 뜻과 우리의 응답

구원의 길 향해 걸어가는 신앙인의 본질 돌아보는 계기

■ 세례 때부터 지닌 순교신앙
부활의 희망으로 박해 견뎌
세례성사 의미 되새기게 해
■ 하느님을 부모로 섬기는 신앙
예수님 모습과 닮은 순교자들
하느님과 나의 관계 성찰해야
■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신앙의 핵심 명확히 깨달아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

발행일2021-09-19 [제3262호, 9면] 

 

전주교구는 9월 1일 전주교구청 호남의 사도 유항검관에서 우리나라 첫 순교자 복자 윤지충(바오로)과 복자 권상연(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인 복자 윤지헌(프란치스코)의 유해를 찾았다고 공포했다. 복자들이 순교한 지 230년 만의 일이다. 이 역사적인 발굴의 처음부터 유해 검증에 이르는 과정을 책임진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이영춘 신부에게 이번 순교복자 유해 발굴이 주는 교회사적·문화사적 의의와 우리 신앙인에게 주는 의미를 들어본다.




하느님께서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큰 선물을 주셨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를 순교 200여 년 만에 다시 만나게 해 주셨던 것이다. 2021년 3월 11일 전주교구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묘소를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특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을 지내는 이때 하느님께서 베푸신 선물이라 더 뜻깊다.

이 선물은 인간의 노력이었다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신 섭리였다.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홀로 일하지 않으시고 우리 인간의 응답과 참여를 원하신다. 응답과 참여에서 중요한 일은 바로 이 일이 지니는 의의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교회사적으로는 한국교회 최초 순교자의 묘소와 유해를 찾았다는 의의가 크다.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첫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찍부터 신자들로부터 공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는 단순히 순서상의 첫 번째 만이 아니라 신앙의 모범과 공경에서도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던 일이었다. 또한 이번 발견과 확인으로 교회사 사료의 부족한 부분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할 수 있었다. 교회사 발전의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묘소를 마련하고 순교자들을 모신 복자 유항검과 초남이 신앙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됨으로써 초기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제공했다.

문화사적으로는 순교자 묘지의 형태와 조성, 백자사발지석, 유해에 드러난 순교의 흔적 등이 중요한 의의를 제시했다. 특히 유해에 드러난 참수형과 능지처사의 흔적은 조선시대 형벌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문화적 자료로써만이 아니라, 신자들이 순교신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값진 신앙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체험은 말로나 지식으로 듣고 배우는 체험을 넘어서 신앙인의 본질을 느끼게 하는 근원적인 체험이 될 것이다.
 

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순교자 묘의 위치.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이처럼 교회사적·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이번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복자들의 모범을 따라 신앙의 길을 충실히 걸으라는 뜻일 것이다. 그 내용을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보자.

첫째, ‘세례 때부터 지닌 순교신앙’이다. 신앙선조들은 세례 받는 순간부터 주님의 길을 따르기로 다짐했기에, 신자라면 마땅히 박해와 수난, 죽음의 길, 즉 주님의 길을 따라야 할 것으로 여기고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 길에는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해가 닥쳤을 때, 복자 윤지충 바오로가 형장으로 나가며 그랬던 것처럼 기쁘게 목숨을 봉헌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둘째, 첫 순교자들이 법정에서 증언한 믿음의 내용, 즉 ‘하느님께 대한 효(孝)의 신앙’이다. 하느님을 ‘대부모’(大父母)로 섬기는 이 신앙은 첫 순교자들 뿐 아니라 그 후의 순교자들에게서도 그대로 드러난 신앙이었다. 하느님은 부모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를 배반할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듯 하느님을 배반할 수도 버릴 수도 없었다. 그 신앙은 ‘주님의 기도’를 가장 중요한 기도로 바치기를 원했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불렀던 예수님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었다. 최초 순교자들의 모습은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 하느님과 나, 예수님과 나의 관계가 어떤 관계에 기초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싫으면 거부하는 관계인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자(父子)와 같은 관계인지 성찰해야 한다.

셋째, 순교자들의 신앙생활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교회 초기 신자들뿐 아니라 박해시대 신자들은 사제를 만날 수도 없었고 만나기도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성사를 받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초기 신자들, 특히 첫 순교자들이 신앙의 핵심을 명확히 깨달아 증언하고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분들이 읽었던 책과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에 있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는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나서 3년 가까이 탐독하고 묵상하며 그 진리를 깨달았다고 법정에서 고백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삶에 많은 제약을 경험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또한 본질과 비본질이 뒤섞여 본질을 찾기 어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첫 순교자들이 보여준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과 스스로 찾아 탐구하는 그 적극적인 행위는 자칫 신앙생활이 나태해 질 수 있는 우리에게 큰 울림과 자극이 된다.

중국 베이징교구장 구베아 주교는 그의 서한에서 “조선에서 두 순교자가 흘린 피는 씨가 되어 더 많은 신자들을 불러 모으며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구베아 주교의 이 기록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세 분 순교자의 유해를 확인한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 수많은 신앙의 증거자들을 이 땅에서 살게 하시고, 또 그 묘소와 유해를 확인시켜 주신 뜻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그 길을 우리도 그렇게 살아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라는 것이다. 자랑하며 행세하라는 뜻도,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으라는 뜻도 아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거행된 103위 시성식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여러분이 증거할 차례입니다.” 그렇다. 세 분 복자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은 곧 우리의 응답과 참여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영춘 신부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