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시기 기획] 전주 청년식탁 ‘사잇길’[가톨릭평화신문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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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4-26 조회 512회본문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만든 김치찌개가 3000원
[부활시기 기획] 전주 청년식탁 ‘사잇길’박민규 기자입력 2024.04.24.11:17
수정 2024.04.24.11:17
학교 점심시간 사잇길을 찾은 전북대 학생들이 가성비 최고 식당이라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주교구 김회인 신부 1년 넘게 운영
준비기간만 2년… 주변서 걱정 많이 해
후원자와 응원 있었기에 가능한 일
‘나눔으로 놀자! 노나 놀자!’ 모토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사업 진행
어려운 이웃 위해 무료 쿠폰도 발행
마음 놓고 밥 한끼 사 먹기 어려운 시대다.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도 밥값이 부담스러운데 학생과 소외 계층은 더할 터. 이들을 위해 맛과 질은 유지하면서 가격은 확 낮춘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 기관들이 늘고 있다. 3000원에 김치찌개를 파는 ‘청년밥상 문간’(대표 이문수 신부)이 대표적. 문간은 최근 5호점까지 개점하며 종파를 넘어 ‘밥’으로 복음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전북대 앞에도 3000원 김치찌개로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식당이 있다. 전주교구 김회인 신부가 운영하는 ‘청년식탁 사잇길’이다. 학생들에겐 ‘가성비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 3월 10일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 축복식으로 문을 열고, 청년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꼭 1년을 넘긴 최근 부활 시기를 맞아 생명과 상생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청년식탁 사잇길을 찾았다.
전주서 소문난 가성비 맛집
“여기, 김치찌개 3인분이요! 스팸 하고 라면 사리도 추가할게요. 아! 음료수도 3개요.”
남자 대학생 3명의 주문에 주방이 분주하다. 이들은 사잇길이 아침에 팔고 남은 샌드위치까지 서비스로 얻었다. 지불한 금액은 1만 4000원. 심지어 밥과 반찬도 양껏 먹을 수 있어 식사를 마치고는 연신 “배부르다”는 말을 내뱉는다.
“학생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다 퍼졌습니다. 부담 없는 가격인데 양도 많고 맛도 좋다고요. 요새 이런 곳 없죠.”(사잇길에서 만난 전북대 학생) 이젠 익숙해진 앞치마 차림에 국자를 들고 주방을 바삐 오가는 김 신부가 답했다. “또 와라!”
전북대 건너편에 위치한 ‘청년식탁 사잇길’. 메뉴는 김치찌개 한 가지지만, 돼지고기와 참치·두부 중 선택할 수 있다. 비건을 위한 김치찌개도 판다. 가격은 단돈 3000원. 스팸과 어묵·라면도 1000원에 추가할 수 있다. 거기에 커피까지 무료로 마실 수 있으니 대학가 젊은이들에겐 문지방 닳도록 오갈 수 있는 가성비 맛집이다. 배불리 먹고 감사를 표하는 젊은이들과 마주하는 공간이 사잇길이다.
올해부터 추가된 메뉴가 있다. 3월부터 시작한 아침 식사다. 2000원에 빵과 샐러드·샌드위치가 나오고 계란프라이도 맘껏 먹을 수 있다. 최근엔 라면도 제공한다.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 신부는 “원가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좋은 취지에 함께해주시는 이들이 있기에 1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준비 기간만 2년, 메뉴와 가격도 400여 명에게 무작위 설문조사를 돌려 결정했다.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했지만, 주변에선 하나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식당하는 게 쉬운 줄 아세요?”, “얼마나 오겠어요?” 김 신부는 “무모한 접근일 수도 있었지만, 직원들과 후원자,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다”며 “돌이켜보면 하느님께서 적재적소에 다 마련해주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묵과 스팸이 추가된 사잇길 김치찌개
사잇길 아침 식사로 나온 샐러드와 샌드위치, 반찬.
또래를 잇고 세대를 잇는 사잇길
‘사잇길’이란 이름에서 이 식당의 목적이 잘 드러난다. 또래와 또래, 세대와 세대,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의미다.
사잇길은 비단 밥장사만이 아니라 영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사업도 한다. 10·29 참사의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 있다’를 사잇길 주최로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했고, 기후 위기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다큐멘터리 ‘수라’도 사잇길 주도로 개봉했다. 김 신부는 “사회적 참사의 당사자가 청년들이고,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세대도 청년이다.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서로 공감하고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밥심’에서 나온 기운이 청년들을 북돋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의 도시이기도 한 전주의 장점을 한껏 활용해 지역 활성화도 도모하고 있다.
사잇길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중심으로 동아리 개념의 공동체 ‘골목 친구’도 만들었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플로깅(조깅을 하며 쓰레기 줍는 일)이나 홀로 지내는 어르신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는 등 청년 스스로 어울림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교사 등 전문가와 청소년을 연계한 ‘멘토-멘티’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1년 동안 사잇길에서 수많은 청년을 맞은 김 신부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사제로서 무엇보다 ‘청년다움’의 회복을 희망했다.
“어떤 가치관에 열정적으로 투신하면서 실패해도 희망을 다시 키워나갈 수 있는, 인생의 돛을 잡고 진취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대가 청년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의 축적을 인간다움의 실현이라고 보는 청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현실이죠.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지만 참 안타깝죠. 그중에도 자립 청년이라든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족돌봄청년 등 하루하루를 무척 힘겹게 지내는 청년들이 참 많습니다.”
김 신부는 ‘공동체적 합리성’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지금은 ‘합리성’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시간과 돈을 어떻게 써야 득이 되는지 정확하게 따지죠. 문제는 많은 청년이 개인적인 합리성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공동체적 합리성도 생각할 수 있거든요. 서로가 조금씩 희생하면 함께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사잇길의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또래를 잇고, 세대를 이으며 ‘청년다움’의 희망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청년 감독들의 독립 영화 스틸컷 사진들과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사잇길에 비치돼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국을 푸고 있는 김회인 신부.
나눔으로 놀자
식탁을 중심으로 문화적인 밥, 정신적인 밥, 영적인 밥이 어우러지고 있다. 이처럼 여러 지향을 담고 있지만, 사잇길은 근본적으로 밥집이다.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3000원이라는 최소의 금액으로 식탁 공동체를 형성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불하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사잇길은 이런 현실을 감안해 어려운 청년·독거 중장년·행려인들을 위해 동사무소 도움을 빌려 무료 쿠폰을 발행하고 있다.
‘나눔으로 놀자! 노나 놀자!’ 사잇길 한가운데 목판 글귀에 적힌 식탁 공동체 사잇길의 모토다. 김 신부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교구에서 자립 준비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해줬습니다.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그 금액으로 어떻게 꾸려나갈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습니다. 신기하게도 1년 후 결산해보니 오히려 남았더라고요. 그만큼 많은 분이 나눠주셨다는 거죠. 아직도 인건비를 포함해 운영 전반에 대한 고민을 거둘 순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 일어나는 나눔의 기적을 믿습니다.”
김 신부는 일련의 과정 끝에 생명과 상생의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라 믿고 희망했다.
“오늘날은 마치 죽음의 문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청년뿐 아니라, 저를 비롯해 수많은 어른도 그 문화에 찌들어 있습니다. 내 안에 생명력을 나눔으로써 ‘청년다움’, ‘인간다움’이 실현되길 바랍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생명력을 나누고 있는 분이 분명 계십니다. 사잇길도 생명의 문화로 이끄는 그 부활의 여정에 10년, 20년 계속 함께하겠습니다.”
후원 문의 : 063-272-0214, 청년식탁 사잇길
후원 계좌 : 농협 301-0322-4118-11, 재단법인 천주교 전주교구 유지재단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