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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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4-06 조회 1,884회본문
쌍치공소는 복흥성당 관할(순창군 쌍치면 소재)로 한옥 건물로 세워져 있다. 입구에 ‘쌍치성당’ 표석이 성당임을 말해주고 있고 공소에 들어서면 어서 오너라 반기시는 예수성심상이 있으며 족두리에 비녀를 하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상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그리고 지킴이 같은 아주 오래된 주목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쌍치공소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공소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기석 베르나르도 공소회장님을 만나 자세한 역사를 듣고 싶어 아침 일찍 찾아뵈었다.
천주교 일제 탄압 시 쌍치마을에서 10Km정도 걸어가면 반룡촌이라는 곳이 있는데 1860년도 피난 와서 살던 우리 선조들이 교회를 지어서 살았던 쌍치공소의 모태지로 6·25 때 소실되어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1993년도 권이복(베네딕토)신부님께서 순창성당에 부임해 오시면서 오룡, 종암, 옥산, 내동, 석동 5곳에 공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너무나 안타까워 한곳으로 모여 기도할 수 있는 공소를 설립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 선조들은 반룡촌에서 피난 시절을 산속에 숨어 살았지만, 이제는 산속에서 내려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면 소재지인 쌍치에 공소를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때 서울의 평신도 단체와 예수성심전교회 후원을 받고 권 신부님은 평화신문(현 가톨릭평화신문), 가톨릭신문을 통한 모금으로 논 720여 평(현재는 900여 평)을 매입하고 깊은 논을 흙으로 채우고 땅을 돋워서 1995년 2월에 착공식을 했다. 공사 자재는 현재 순창 장류민속마을의 성가정식품 대표인 김만종(비아똘) 형제가 본인의 집을 지으려고 준비했던 나무들을 봉헌했고, 공소의 모든 신자는 하나에서 열까지 손수 지붕에 기와를 올리고 흙을 바르고 정성을 다하여 1996년 12월에 이병호(빈첸시오)주교님의 주례로 봉헌식을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본당 신부님의 요청으로 94년도에 평신도 선교사인 황명훈(요왕마타)형제와 부인 하계옥(모니카) 자매가 쌍치공소의 부흥에 한몫을 하였다. 부부는 15년간 신자 재교육에 열성을 다하였고 하 모니카 자매는 직접 운전하여 멀리 있는 신자들을 태워 와 미사를 드리게도 하고 아픈 신자가 생겼을 때는 병원에 직접 모시고 가기도 하였다. 선교사 부부가 쌍치공소에 온 후로 영세한 사람만 100명이 넘었지만,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고, 어르신들도 세상을 떠나며 점점 신자들이 줄어들게 되었다.
2011년 6월 5일 순창성당 관할의 복흥공소와 쌍치공소가 통합되어 복흥성당으로 승격되면서 복흥성당 관할의 공소가 되어 공소 신자들은 복흥성당과 쌍치공소에서 미사를 드렸다. 당시 쌍치공소의 신자들은 공소의 건물을 두고 복흥성당으로 미사를 다니는 것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그 마음을 어루만지려고 하였는지 현재는 공소의 신자들이 냉담자, 새신자 찾기에 노력하여 5-60명의 신자들이 매주 목요일 밤 8시, 매월 첫 주일 오전 8시에 미사를 드리고 있다. 지금도 소망이 있다면 어린아이들이 성당 마당에서 뛰어놀며 젊은 신자들이 내 집처럼 오가며 활성화되어 레지오 모임도 하고 제단체가 있어 사회봉사도 하며 활성화된 쌍치공소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취재 | 한창님 마리아(교구 기자단), 사진 | 최기우 프란치스코, 전미자 글라라(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