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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천호성지와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가톨릭신문 20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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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3-17 조회 1,5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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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6)전주교구 천호성지와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며 가꾼 옛 교우촌을 거닐며

하느님 부르심 뜻하는 ‘천호’
박해 피해 숨어 살며 형성된 교우촌
‘부활성당’ 순교자들 부활을 상징
한국교회 최초로 지은 성물박물관

발행일2022-03-20 [제3286호, 13면] 

 

부활성당 외부 전경.

봄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천호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천호성지(전북 완주군 비봉면)를 찾았다. 산 속에 있는 성지는 우리나라 교회의 혹독한 박해 시기와 교우들의 고단한 신앙생활을 알려준다. 당시에 교우들은 기나긴 박해를 피해서 산골이나 외딴 곳으로 숨어들어가 살면서 교우촌을 만들었다. 고향 산천을 떠난 교우들은 주변의 흙으로 옹기를 구워 팔거나 화전을 일구며 두렵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에 천호산(天壺山, 해발 501m)이 있는데 산 모양이 호(壺)리병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해서 천호성지(天呼聖址)로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의 산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담은 것이다.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하여 충청도 지역의 교우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천호산 일대에 들어와 곳곳에 작은 신앙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천호성지 인근에는 박해시대에 다리실(천호)공소를 포함한 7개의 공소가 있었다. 성지 근처의 미사굴은 1846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체포된 후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약 두 달간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곳이다.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 외부 전경.


오래전부터 천호산 자락의 타인 땅에 살던 교우들은 1909년 되재본당의 파리외방전교회 목세영(Bermond, Jules Marie, 1881-1967) 신부를 중심으로 정성을 모아 150정보(1정보=3,000평)를 매입하였다. 1941년에는 그 가운데 순교자들의 묘와 순교자들이 묻혀있을 곳으로 생각되는 땅 75정보를 교회에 봉헌하여 오늘날이 천호성지 토대가 마련되었다.

천호성지는 넓은 자락에 걸쳐 흩어져 있어서 전체를 다 둘러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곳에는 호남교회사연구소와 다리실(천호의 옛 지명) 교우촌, 천호성당,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과 순례자의 집, 성인 묘역과 부활성당, 봉안경당과 피정의 집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외에도 천호성지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편백나무 사이로 이어진 아름다운 순례의 길이 여러 개 있다. 순례자의 길, 로사리오 길, 십자가의 길, 묵상길, 품안길, 치유의 숲이 곳곳에 있다. 성지에 있는 이 오솔길들을 걸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에 대해 구상할 수 있다.

성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다리실 교우촌과 한옥 형태의 천호성당이다. 박해를 피해서 이곳에 온 신자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 서로를 도우며 살았다. 한 교우는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에 안기면서 “모두가 성인이 아니고서는 못 살 수도원에서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천호성당 지역을 나와서 로사리오 길을 따라 올라가면 2013년 문을 연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이 있다. 교우의 성물기증과 정성으로 마련된 이 박물관은 3층으로 구성되었다. 성 바오로관에는 예수 탄생과 수난, 부활에 관한 성물이 전시되어 있다. 성 베드로관에는 교회의 일곱 성사와 순교자 관련 자료, 영상실과 소성당이 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성물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성물과 오래된 신앙 서적, 성인들의 유해를 담은 성광도 있어서 성물에 대해 공부하며 기도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우리에게 전해진 성물을 보고 기도하며 신앙의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공간이다.

천호성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성인 묘역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곳이 성지로 불리는 이유는 이 묘역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03위 순교성인을 상징하는 103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묘역에 다다른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성 정문호(바르톨로메오, 1801-1866), 성 손선지(베드로, 1819-1866), 성 이명서(베드로, 1820-1866), 성 한재권(요셉, 1835-1866)과 무진박해(1868년) 때 여산에서 순교한 분들과 무명 순교자들을 비롯한 여러 신앙선조들이 묻혀 있다. 계단을 올라 성인 묘역에 다다르면 우리 교회가 순교자들의 희생 위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 내부.


성인 묘역 아래에는 현대식으로 건립한 부활성당(2008년)이 있다. 이 성당은 천호성지 곳곳에 묻힌 성인과 순교자들, 그리고 열심한 신자들이 장차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됨을 알려준다. 제단 벽에는 양손을 들고 사람들을 축복해주시는 예수부활상(이춘만 작가 제작)이 있다. 이 성당 아래에는 하느님을 충실히 믿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이 안식을 누리는 봉안경당이 있다.

이외에도 성당 근처에는 호남교회사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호남 지방의 천주교회사를 연구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를 정리하여 알려준다. 천호성지는 우리나라 초기 신앙공동체부터 오늘날까지의 교회 역사를 한 자리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천호성지 곳곳을 거닐고 기도하면서 몇 년 전에 방문했던 프랑스 성모 발현지인 루르드를 다시 떠올린다. 루르드 성지의 작은 산골 마을과 개울, 광장과 우뚝 솟은 성당, 야외 성모 발현 동굴과 십자가길이 다시 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다. 루르드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지의 광장을 거닐 때처럼 천호성지의 곳곳에 있는 오솔길을 걸으면서 천호(天呼),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 성지 및 박물관 관람 안내

주소: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성지길 124
전화: 063-263-1004/5
미사: 매일 11시(월요일 제외)
성물박물관 개관: 오전 10시-오후5시(월요일 휴관, 12월-3월은 오전 10시-오후 4시30분)
주변 성지: 익산 나바위성당, 여산 숲정이성지, 완주 되재공소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