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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터 전주 부에나까사 카페[가톨릭평화신문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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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1-28 조회 8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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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여성들 희망 담은 커피처럼, 서로 따뜻함 전하는 사회 됐으면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터 전주 ‘부에나까사’ 카페

2022.01.23 발행 [16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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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김봉술 신부, 오홍련씨, 전지현씨, 차소연씨, 박광섭 매니저가 커피잔을 들고 웃음을 짓고 있다.



‘커피 한잔 할까요.’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거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뜻이다. 여유를 갖고 쉬어가자거나,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해보자는 뜻일 수도 있다. 이처럼 커피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커피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다. 한국 사람들과 발맞춰 걸어가기 위한 작지만 큰 발걸음이다. 베트남 사람이자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다. 13일 카페 ‘부에나까사(Buenacasa)’에서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을 만났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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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부에나까사’ 내부 전경.



부에나까사(Buenacasa)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쌀쌀한 오후다. 카페에 들어서니 온기가 몸을 감싼다. 카페 내부에는 나무와 벽돌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천장에 있는 물고기 모양의 전등이 눈길을 끈다. 파란 하늘과 겨울 산이 훤히 보이는 큰 창문과 곳곳에 걸린 그림, 꽃과 나무 화분은 따뜻한 커피와 함께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계산대로 발길을 옮기니 베트남 이주 여성인 오홍련씨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전주교구청 인근에 위치한 카페 부에나까사. 2019년 8월 문을 연 부에나까사는 스페인어로 ‘좋은 집’이라는 뜻이다. 부에나까사는 베트남 이주 여성인 오홍련(예비신자)ㆍ전지현(마리아)ㆍ차소연(소화 데레사)씨가 함께 만들어가는 카페다. 이들 뒤에는 전주교구 김봉술 신부(데레사 요양원장)가 있다.



말할 수 없는 슬픔

전지현씨는 결혼을 하면서 한국에 왔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한국 사람들은 남편과 달랐다.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차별받았고 존중받지 못했다.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으면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대하는 게 보여요. 느껴져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던 건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전씨였다.

차소연씨도 결혼 이주 여성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의사소통이었다. “어디서나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회사에서요. 사람들이 저를 멀리했어요. 사람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했고 사람들이 다가오지도 않았어요.” 말이 통하지 않아 겪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누가 알까.

오홍련씨는 문화적 차이로 시어머니와 오해도 많이 있었다. “아기가 밤에 나쁜 꿈을 꾸고 울어서 제가 과도를 아이 머리 위에 놓았어요. 베트남에서는 그렇게 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왜 칼을 거기 두느냐고 사람 죽이려 하냐고 그랬어요.” 문화적 차이가 불러온 오해였다.



고난, 슬픔이 지나간다


“하느님이 신부님을 만나게 도와주신 것 같아요. 신부님을 만나서 세례도 받았고요.” 김봉술 신부와의 만남에 대해 묻자 전지현씨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전씨는 “한국에 살면서 특별히 좋은 기억이 없는데 이곳에 와서 일하면서 신부님을 만나고 수녀님들과 언니들을 만난 게 가장 좋은 기억”이라고 말했다.

차소연씨도 김 신부를 만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 여긴다. “신부님이 저희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시고 좋은 공간도 만들어 주셨어요. 여기는 차별도 없고 한국 사람들처럼 일할 수 있어요. 신부님이 저희를 생각해주시고 배려해주시는 덕분입니다.”

오홍련씨에게도 김 신부는 은인이다. “감사한 분이죠. 힘든 일 이야기하면 신부님이 상담도 해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세요. 신부님은 정말 따뜻한 분이세요.”

카페에서 일하면서 이들의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말없이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공장이나 식당과는 달리 카페에서는 손님들을 만나며 한국어로 대화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며 한국 문화도 배우고 느꼈다. 한국어가 서툴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카페를 찾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들은 김 신부를 만나 부에나까사에 들어오면서부터 하루하루 행복한 기억을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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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현씨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그가 가장 자신있는 메뉴는 카페라테다. 그는 라테아트도 배웠다.



함께 걷는 길

김 신부는 7년 전 사막에 갔을 때 영국에서 유학하던 한 청년을 만났다. 청년은 김 신부에게 자신의 꿈을 들려줬다. “외국인으로 고향을 떠나 사는 게 너무 힘들었대요. 그러다 한 카페에 갔는데 주인이 너무 환대해주고 잘해줬대요. 그래서 카페 주인처럼 자신도 다른 사람을 환대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청년은 김 신부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늘 보여줬던 하늘의 별을 이야기하며 누군가를 늘 비춰주고 인도해주는 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김 신부도 청년에게 말했다. “저에게 꿈이 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신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 꿈은 한국에 와서 사는 이주민들, 대한민국 국민인 그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함께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 신부는 그 꿈을 카페 부에나까사를 통해 이뤘다. 김 신부는 한국에 와서 사는 이주민들과 발맞춰 걸어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김 신부는 2018년 카페를 준비하기 전 이주 여성들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진행했다. 그 후 카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할 사람들을 모집했고 오홍련씨와 전지현씨, 차소연씨가 함께 하게 됐다.

김 신부는 처음 카페를 시작하면서 이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들에게 힘도 많이 받았고 많이 배우기도 했다. 이들은 김 신부에게 가족이 됐다. 그는 “이분들이 자신감을 얻고 한국말을 한다든지, 한국 사람을 대하는 것이 너무 편안하고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을 이주민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분들을 통해 저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김 신부는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이주민들이 정착해서 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일하는 분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이 안타깝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분들은 이들의 가정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 받쳐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신부는 “이주민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장점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며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도 지속해서 마련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 신부는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며 “이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등하게 대우하고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홍련씨와 전지현씨, 차소연씨가 말하는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사는 데 필요한 것은 한국어 교육, 부부상담과 가족상담, 그리고 일자리다. 한국에서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들이다. 이주민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