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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2004년도 사목교서 - 아버지의 눈으로 가정을 바라보고...

본문


아버지의 눈으로 가정을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성령의 힘으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합시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1. 세계적으로 비상한 관심과 기대 속에서 준비하고 맞이한 대희년, 그리고 그 해에 시작된 새 천년기도 벌써 이만큼 진행되어 다섯 번째 해가 밝았습니다. 2000년에 우리 교구는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성령의 힘으로 실천합시다> 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희년 특별 사목교서를 통해서 장기적인 사목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성서운동, 선교운동, 전례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 등을 꾸준히 기울여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대희년 특별 사목교서에서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라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이 각기 자신의 고유한 성소를 더욱 분명히 깨닫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모범을 따르고 그분께서 걸어가신 길을 가야만 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대희년 특별 사목교서를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고 말씀하신 다음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더 할 수 없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로마 군인의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심장(요한 19,34 참조)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 성심, 그분의 마음은 죄만 빼고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 되셔서 인간생활의 기쁨과 슬픔 그 환희와 고통을 남김없이 체험하신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과 연민의 정을 잘 드러내 줍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필립 2,5).” (대희년 특별사목교서, 21쪽).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하느님> (1요한 4,8.16)을 세상에 보여 주심으로써 사람 하나 하나와 인류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2. 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사랑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이를 실천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주변 사회와 세상의 일치가 빠른 속도로 깨져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어디에서보다도 가정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흔들리고 일치의 끈이 풀어지니 그 여파가 자녀와 다른 가족들에게도 확산되는 데에서 오는 문제들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체험하며 우리는 비슷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던 장면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처음부터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과 또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을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3-6).


리는 여기에서 “처음부터 창조주께서”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예수님 스스로 쓰셨던 표현대로, 중간에 사람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8절) 오늘날에도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고 말았지만, 이런 사태 앞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의 이상을 되찾는 일입니다.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태풍에 휩쓸려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방향을 다시 찾아내는 일입니다. 현재의 사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손을 놓아버린다면, 그것은 태풍 그 자체보다 더 위험하고 절망적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들어 사람들에게 바로 이 정확한 방향, 처음의 이상, 애초의 꿈을 다시 일깨워 주시고 그것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방향을 향해 혼신의 노력을 쏟도록 촉구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의 현실에 비해 그 이상이 얼마나 어렵게 생각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이 반응은 동시에 결혼이 얼마나 진지한 준비와 일생을 건 결단,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3. 러므로 결혼과 가정이 무섭게 무너져가고 있는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 애초의 이상, 본래의 설계도를 다시 찾아내고 가야할 방향을 분명히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류의 역사 전체, 한 사회, 개인 하나 하나는 길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과 또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을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찾아내야 할 본래의 설계도, 애초의 이상, 가야할 방향입니다.


음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하시고,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창세 1,27)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를 만난 남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창세 2,23). 성서의 이 대목에 따르면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를 이루는 일, 혼인입니다. 하느님 스스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 이렇게 셋이 하나를 이루는 가정, 혹은 공동체이시며 그 하나됨이 더 없이 완벽하기 때문에 그분의 가장 정확한 이름은 “사랑”(1요한 4, 8. 16.)입니다. 혼인은 세상에서 이런 하느님의 모습을 제일 잘 보여주는 표지이자 실현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부부의 창조” 이야기로 시작하여(창세 1,26-27 참조) 구원된 모든 사람이 들어갈 “어린양의 혼인 잔치”(묵시 19,9)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틀린 애초의 창조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요한 2,1-11)을 행하시는 일로부터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에게 혼인은 인간적인 일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표시하고 또 실제로 받게 하는 통로 곧 성사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혼인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이 이상을 향해 의연히 걸어갈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4. 론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려울 뿐 아니라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창세기에서 그것을 확인합니다. “서로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를”(창세 2,25) 만큼 완전히 하나였던 두 사람 사이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순간 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와 함께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는”(창세 3,10) 심리 속으로 빠져들었고, 동시에 하느님과 배우자를 원망하는 마음 속으로 휩쓸려 갑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창세 3,12). 둘이 한 몸으로 출발한 역사는 이렇게 해서 걷잡을 수 없는 분열과 비극의 수렁을 향해 굴러 떨어졌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분열되어 나가니(불순종), 자기 자신과도 분열되고 (부끄러움),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분열되며(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주신 여자가), 마지막으로는 자연과도 분열되었으며(가시덤불과 엉겅퀴, 그리고 고된 노동과 출산의 고통), 이 분열의 물결은 전 창조계를 뒤덮고 말았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창세 11,4) 기울인 일체의 인간적인 노력과 정치적 기술들은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습니다. 바벨탑 이야기(창세 11,1-9)는 그 사실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이 이런 사태를 바로잡아 처음의 모습을 회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에페 2,13). 과연 그리스도께서 미리 약속하셨던 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을 때 바벨탑 현상이 완전히 뒤집혀 각기 다른 말을 쓰던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통하는 세상이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이 전하는 오순절 사건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5. 부는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랑의 끈이 끊어지고 가정이 무너지면 세상이 함께 무너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서만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해서 배운 사랑을 무엇보다도 먼저 부부가 서로 상대방에게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남편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5).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앙인에게 있어서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는 일은 한 삶을 걸고 계속 닦아 가야 할 도이며, 키워가야 할 생명이고, 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주신 가르침, 보여주신 모범,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보내주시는 힘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가정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동원하신 모든 수단, 펼쳐오신 역사 전체에서 빛과 힘을 받아야만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과제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가정은 그 자체가 “가정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신앙인들의 혼인과 가정은 세상의 어떤 풍파 속에서도 창조주께서 본래 뜻하셨던 모습을 지켜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정 교회”에 관해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흔히 신앙에 대해 무관심하며 적의까지도 품는 이 세상에서, 이 시대의 신앙인들의 가정은 활력이 넘치고 빛을 발하는 신앙의 요람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을 오래된 표현에 따라 “가정 교회”(교회헌장, 11항.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공동체>, 21항)라고 부른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되어야 하며,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


러므로 그리스도 신앙인은 자신의 구원은 물론 사회 전체의 구원을 위해서도 가정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바로 세우는 일에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 사목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인 각 가정”(가정공동체 72항)에서 먼저 온갖 창의력을 발휘해서 적절한 방안과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여 실천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참고삼아 몇 가지 방향만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6. 실천 사항

1) 혼인성사를 위한 준비
. 먼 준비 : 부모의 아름다운 가정생활은 자녀들에게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인 교육이 될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늘 성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전례생활에 충실할 때 그것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도 훌륭한 모범이 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교육, 성교육, 가정교리 등도 자녀들에게 미래의 가정생활을 위한 효과적인 준비가 될 것입니다.

. 중간 준비 : 그리스도 신앙인의 혼인이 지니는 의미,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교육과 서적 그리고 선배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목적을 가지고 청소년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된 것이 <선택> 과정입니다. 젊은이들이 이를 적극 활용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가까운 준비 : 결혼을 앞둔 이들을 위해 교구에서 마련하는 <가나강좌>는 최소한의 필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따라서 결혼 전에는 이를 반드시 이수해야 하겠습니다.


2) 가정기도
통적으로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온 가족이 기도를 함께 바쳐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가정기도에 대해서 들어본 적조차 없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되살려 아침 저녁으로, 혹은 적어도 저녁에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택하여 기도를 함께 바치는 전통을 다시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이른바 세대차를 비롯하여 대화부족의 문제 등이 상당부분 자연히 해소될 것입니다.

가정기도의 순서
- 성서봉독 : 그날 매일미사에 나오는 말씀, 혹은 특히 신약성서를 처음부터 하루에 한 장씩 읽는다.
- 저녁기도 : 기도서에 나와 있는 것으로 한다.
- 자유기도 : 가족을 위해서, 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세상과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 영광송 : 기도를 끝마치며 영광송을 바친다.


3) 안수기도
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의 기도를 가정 단위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족장들은 복을 빌어주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손을 얹어 안수하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안수하여 축복해주었고(창세 48,14), 그 결과 두 사람은 “숱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축복의 표지로 아이들에게 안수하셨습니다(마르 1,13-16; 마태 19,13-15; 루가 18,15-17).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도 안수해 주셨습니다(루가 24,50-5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안수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5-18). 실제로 사도들은 새로 신자가 된 사람들,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 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빌어주기 위해서 안수를 했습니다.

제 우리는 이런 전통을 되살려 부모가 자녀에게, 부부 서로간에,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때에는 안수기도를 해 주는 습관을 도입해야 하겠습니다. 자녀가 각급 학교에 들어갈 때, 졸업할 때, 시험을 앞두었을 때, 멀리 여행을 떠날 때, 특별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등에 간단하게 안수기도를 해 준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가족간의 사랑을 드러내는 훌륭한 방법도 될 것입니다.


4) <선택>
혼을 앞둔 젊은이들이 가정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기본 훈련과 영성 수련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개발된 이 과정은 우리 나라에서도 큰 효력을 내며 전파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에서도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과 협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5) <부부 주말> 운동
부 주말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교회 안팎의 부부들에게 대단히 크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뿐 아니라, 좀더 풍요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누구나 이 과정에 참여하면 삶에 큰 빛과 힘을 얻을 것입니다.


7. 결론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리 신앙인들도 가정을 위협하는 세상의 역풍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복음의 빛과 성령의 힘을 받으면 우리는 이를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와 함께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2고린 4,7-9).



 

2003년 대림 제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이 병 호(빈첸시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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