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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29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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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1-25 15:16 조회1,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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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2021년 2월 11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
병자들에 대한 돌봄의 바탕이 되는 신뢰 관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29차 세계 병자의 날은 2021년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거행됩니다. 세계 병자의 날 거행은, 병자들뿐만 아니라 의료 기관과 가정과 공동체에서 그들을 지원하고 돌보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의 영향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비롯하여 모든 이에게 제가 영적으로 가까이 있음을 밝히며 교회의 관심과 사랑을 약속드립니다. 

1. 이번 세계 병자의 날 주제는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자들의 위선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복음 구절에서 영감을 받습니다(마태 23,1-12 참조). 믿음이 다른 이들의 삶과 필요와는 무관한 공허한 말로 축소될 때,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과 우리가 사는 삶은 일치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심각한 위험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자기 우상화에 빠질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시고자 강한 표현을 사용하시며, 이렇게 단언하십니다.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마태 23,8).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마태 23,3) 자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 누구도 위선의 악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선은, 우리가 한 분이신 아버지의 자녀로서 보편 형제애를 실천하도록 부름받은 대로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가로막는 매우 심각한 악입니다. 

형제자매의 곤궁한 처지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위선과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응답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멈추어 그 형제자매에게 귀 기울이고,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삼아 그 고통을 짊어지기까지 하면서 그들을 위해 봉사하라고 당부하십니다(루카 10,30-35 참조).

2. 질병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이 힘없는 존재이고 본질적으로 다른 이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께 의지하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사실 아플 때,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는 불안, 두려움, 때로는 당혹감이 엄습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됩니다. 건강은 우리의 능력이나 걱정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마태 6,27 참조).

질병은 삶의 의미에 관한 물음, 우리가 믿음으로 하느님께 여쭙는 그러한 물음을 제기합니다. 이는 삶의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곧바로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입니다. 이 힘겨운 추구에서 친구나 친지가 우리를 늘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에 나오는 욥은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욥의 아내와 친구들은 그의 불행에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욥을 비난하여 그의 외로움과 고충만 가중시킵니다. 욥은 버림받고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서도, 욥은 모든 위선을 거부하고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향한 진실의 길을 선택합니다. 욥이 끊임없이 부르짖으니 마침내 하느님께서 응답하시어 그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욥의 고통이 징벌이나 형벌이 아니고, 더군다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상태나 하느님께서 무심하시다는 표지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은 욥은 주님께 다음과 같이 감동적이고 힘찬 고백을 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3. 질병에는 언제나 하나 이상의 얼굴이 있습니다. 곧, 질병에는 모든 병자의 얼굴뿐만 아니라, 경시당하고 배척받는다고 느끼는 이들, 기본권을 무시하는 사회 불의의 희생자들의 얼굴도 있는 것입니다(「모든 형제들」, 22항 참조).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의 현실은 보건 체계의 취약성과 병자들에 대한 지원 부족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치료에 대한 접근이 연로한 이들과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늘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늘 공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정치적 선택, 자원 관리 방법, 책임자 역할을 맡은 이들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병자 간호와 지원에 자원을 투자하는 일은, 건강이 으뜸 공동선이라는 원칙과 연결되는 우선 사항입니다. 한편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을 통하여, 의료진, 자원봉사자, 지원 실무자, 사제, 수도자를 비롯하여, 직업의식과 자기희생, 책임감, 이웃 사랑으로 수많은 병자와 그 가족들을 돕고 돌보며 위로하고 그들에게 봉사해 온 모든 사람의 헌신과 관대함도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환자들을 우리 한 인류 가족의 구성원으로 또 이웃으로 여기며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실제로 친밀함은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귀중한 유향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이웃됨을, 죄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로이 다가가셨던 착한 사마리아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으로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활동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지도록, 그리고 특히 아프고 힘없고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요한 13,34-35 참조). 우리는 이러한 친밀함을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경험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형제적 사랑은 치유의 공동체를 낳습니다. 치유의 공동체는 아무도 내버려 두지 않고, 특히 가장 약한 이들을 포용하고 환영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를 위하여 저는 형제적 연대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형제적 연대는 봉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띱니다. 이 모든 형태는 이웃에 대한 도움을 지향합니다. 봉사는 “우리 가정과 사회와 민족 가운데 힘없는 구성원들에 대한 돌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헌신을 통하여 모든 이는 “가장 힘없는 이들의 구체적인 눈길 앞에서, 자신의 바람과 열망과 권력 추구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봉사는 언제나 이러한 가장 힘없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들과 직접 접촉하며 그들의 친밀함을 느끼고 때로는 이 친밀함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며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결코 이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관념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봉사하기 때문입니다”(쿠바 아바나에서 한 미사 강론, 2015.9.20.).
  
4.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관계적 측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관계적 측면을 통하여 환자에 대한 전인적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관계적 측면을 소중히 여길 때에, 의사, 간호사, 전문가, 자원봉사자들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신뢰하는 상호 인격적 관계에 힘입어 그들의 치유 여정에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새 의료인 헌장」, 4항 참조). 돌봄이 필요한 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이들 사이의 약속, 곧 상호 신뢰와 존중, 성실성과 언제라도 응답하는 자세에 기반한 약속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방어적 자세를 극복하고 병자들의 존엄에 초점을 맞추며, 보건 의료 종사자들의 전문성을 수호하고 환자 가족과 바람직한 관계를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병약한 이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성덕에 이른 이들의 수천 년에 걸친 증언에서 볼 수 있듯이, 병자들과 이루는 이러한 인격적 관계에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부터, 병자에게도 치료자에게도 충만한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이 샘솟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이를 거듭 증언하며, 예수님의 치유는 주술적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만남 그리고 상호 인격적 관계의 결실이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바로 그 만남과 상호 인격적 관계 안에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베풀어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믿음의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거듭된 예수님의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사랑의 계명은 우리가 병자들과 이루는 관계에서도 구체적으로 실현됩니다. 한 사회가 형제애의 정신으로 가장 힘없고 고통받는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돌보아 줄 수 있을 때에 더욱 인간적인 사회가 됩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아무도 홀로 남겨지지 않게 합시다. 아무도 배척받거나 버려졌다고 느끼지 않게 합시다.     

자비의 어머니이시며 병자의 치유이신 마리아께, 모든 병자와 보건 의료 종사자, 그리고 고통받는 형제자매에 대한 도움을 아끼지 않는 모든 이를 맡겨 드립니다. 성모님께서는 루르드 성모 동굴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전 세계 성모 성지에서 우리 믿음과 희망을 지켜 주시고 우리가 형제애로 서로를 보살필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모든 이 각자에게 저의 진심 어린 교황 강복을 보냅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0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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