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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최여겸처럼 신앙을 증거하는 삶 살자[가톨릭평화신문 2021-09-05]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1-09-02 조회 220회

본문

 

“복자 최여겸처럼 신앙을 증거하는 삶 살자”

전주교구 ‘복자 최여겸과 개갑 순교성지’ 심포지엄, 배교 거부하고 개갑장터에서 순교

2021.09.05 발행 [16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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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구청 내 유항검관에서 8월 30일 열린 ‘복자 최여겸 마티아와 개갑 순교성지’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BJBS 복자방송 BMC 유튜브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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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여겸 마티아 복자화



1846년 6월 5일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된 김대건 신부는 해주 감영으로 압송된 후 황해 감사 김정집으로부터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고 심문을 받는다. 이에 김대건 신부는 “그렇소. 나는 그 교가 참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오. 그 교는 천주를 공경하도록 나를 가르치고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해 주오. 배교하기를 거부하오”라고 신앙 고백을 했다.

김대건 신부의 이 신앙 고백이 있기 45년 전인 1801년 4월 전라 감사가 같은 질문을 체포된 한 천주교인에게 한다. 바로 최여겸(마티아)이다. 이에 최여겸은 “저는 유일한 참 종교를 따릅니다”고 고백하고 그해 8월 고창 개갑장터에서 순교했다.

복자 최여겸의 신앙과 삶, 그리고 그의 순교지를 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8월 30일 전주교구청에서 열렸다. ‘복자 최여겸 마티아와 개갑 순교성지’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은 개갑 순교성지의 영성화 작업으로 전주교구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마련했다.

복자 최여겸은 1763년 무장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윤지충, 유항검,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웠다. 세례를 받고 입교 후 고향으로 돌아와 전교 활동에 매진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됐다. 그는 무장 관아, 전라 감영,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됐는데 그때마다 모진 고문을 받았다. 최여겸은 1801년 8월 27일 38세로 고창 개갑장 터에서 순교했다.

손숙경(부산가톨릭대학교 근현대한국사) 교수는 “최여겸은 십계명을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서 실천하려 했으며, 심문과정에서 천주교의 핵심교리 중 하나인 ‘상선벌악’에 관해 알고 말한 사실은 그의 신앙 깊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이어 “최여겸이 어려서부터 천주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배경에는 당시 전라도 지역사회에 서학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조성돼 있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여겸은 서학에 대한 관심에서 나아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전주교구 고창본당과 고창군은 2002년 개갑장터를 성지로 개발하기로 하고 2004년 22번 국도변 석교리 186부지 1만 6259㎡를 매입했다. 고창군은 그해 6월 8일 개갑장터를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제정했다. 이후 2013년 9월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성지를 축복했고, 2017년부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성지 관리를 맡고 있다.

복자 최여겸의 순교지인 개갑장터는 무장ㆍ고창ㆍ흥덕의 세곡(稅穀)을 거둬 한양 경창(京倉)으로 수송하던 석교리(石橋里)와 이웃해 서해안 수산물과 주변 지역 농축산물을 집산하던 상업요지로 발전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시행된 대규모 간척사업, 그리고 1970년대의 구릉지 개발, 도로 개발, 마을 건설 등 대규모 토목공사 등에 따라 정확한 위치를 확정할 수 없었다.

강대균(서울교육대 사회과교육) 교수는 이에 1872년 무장 지방지도, 1930년대와 1960년대 지형도, 2020년 국토지리정보원 자료 등을 기초로 개갑장터 순교지가 갑촌 북쪽 장터골 상부와 감나무잔등을 넘어오는 길과 만나는 완만한 비탈밭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그러면서 주막과 객주가 밀집했던 마을 앞 공터로 석교창과 상하면으로 갈라지는 길목이었던 이곳의 지리적 배경을 기초로 ‘최여겸 순교길’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신앙 전파와 선교에 열성을 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복자 최여겸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일상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