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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1993년도 사목교서 -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본문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 19 - 20).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것은 예수께서 떠나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선교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당신 자신은 조용히 물러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교회가 해야 하는 단 한가지 일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힘을 받아
자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살아온 스승께서 떠나시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만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 간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한 말 때문에 모두 슬픔에 잠겨 있다”(요한 16, 5 - 6). 그러나 스승과의 이별에 덧붙여 주어진 엄청난 사명 앞에서 제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을 잘 헤아리신 주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부탁이나 명령만 하시지 않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도움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수께서 떠나시고 제자들이 실제로 이 복음선교 사명에 뛰어들었을 때, 그들은 그 약속이 놀라운 모양으로 이루어짐을 체험하였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 8)하신 말씀 그대로, 그들은 자신들의 인간적 능력이나 자격과는 아무 상관없이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선교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었고, 그 효과는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런 체험을 통하여 제자들은 그 옛날 스승께서 해주신 또 하나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요한 16, 7).


수께서 떠나가시고 대신 성령을 보내주셨을 때, 제자들은 신앙인으로서도 비로소 어른이 되어 스승이 생전에 하시던 일을 “대담하게”(사도 9, 27) 또 더 효과적으로 계속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성숙을 위해서도 더없이 귀중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들이 들은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물불 가리지 않고 그 일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선교는 교회 역사를 통하여 어느 시대에나 교회 전체를 움직이는 중심 동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사도 시대 이후에도 똑같은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헌신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세계 방방곡곡으로 전해져 온 것입니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를 따라서
런데 우리 시대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 - 1965년)는 2천년의 선교역사 속에서도 제일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우선, 이 공의회는 그리스도를 그 가장 중심적인 문헌의 명칭 그대로 「만백성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전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빛으로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자 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근본적인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서두 참조).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에서는 “교회가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1장 2항)고 말하고,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서는 “주께서 친히 성세와 견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사도직에 부르신다”(33항)고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는 “그리스도 신자로의 부르심은 바로 사도직에로의 부르심임”(2항)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난 공의회가 천명한 대로 이 복음선교의 사명은 교회가 세상에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에, 그 후에도 보편교회의 관심은 이 방향으로 집중되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선교교령」의 반포 후에도 세계 주교들의 요청에 따라 교황청에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선교에 관한 문헌을 계속 발표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들로 하여금 복음선교의 중대한 사명을 깊이 깨닫도록 해 왔습니다. 「선교교령」 반포 10주년이 되던 1975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께서 「현대의 복음선교」를 반포하셨고, 그 25주년이 되던 1990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회칙 「교회의 신교사명」을 내놓으셨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후속 문헌들 속에서 계속 강조되어온 가장 혁명적인 가르침은 “주께서 친히 성세와 견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사도직에 부르신다”(교회헌장 33항)고 한 선언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 선언은 선교 사명에 관한 종전의 가르침에 비할 때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전에는 선교의 사명이 교황과 주교, 그리고 그들을 돕는 사제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공의회의 이 가르침이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이전까지 교회의 사명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표상 하나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랫동안 우리는 교회를 <베드로의 배>로 묘사하고,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건져 올리는 장면을 통해 교회의 활동을 이해했습니다. 그 표상에 따르면, 구원활동 혹은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선장과 그를 도와서 일하는 선원들 뿐입니다. 교황과 주교 그리고 그들을 도와서 일하는 사제들이 그들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손발 묶어놓고 앉아서 아무 할 일 없이 그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뿐인 것입니다. 거기서 가장 이상적인 평신도상은 말썽부리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하는 일이란 전혀 없이 남이 주는대로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유아기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바로 이 점을 바로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의회에서 채택한 교회론과 거기에 상응하는 사도직 관계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가 구조선으로서의 교회에 관한 표상을 다시 그린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거기서 선장과 선원의 역할은 오히려 한정되고, 실제로 사람들을 바다로부터 건져올리는 작업은 조금 전까지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그 사람들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물에서 구조된 후, 간호를 받고 원기를 회복하자마자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어 다른 사람들을 구조하고, 그렇게 구조된 사람들 또한 적절한 간호와 휴식을 통해 원기를 회복한 뒤에는 역시 구조활동에 뛰어듭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부터는 교회 안에서 복음의 순수 소비자로서만 머무는 사람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사명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 지난 공의회는 말합니다. “자기 능력대로 교회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 지체는 교회를 위해서나 또 그 자신을 위해서나 아무 데도 쓸데없는 지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2항).


달라진 우리
리는 여기서 두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선, 사도직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복음선교를 위해서 일할 사도들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제수가 2,000명도 안되는 우리나라에 300만의 사도가 있게 되는 셈이며, 우리 교구만 하더라도 120여명이 하던 일을 이제부터는 12만명이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도들이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온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복음을 생각할 때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를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러나 지난 공의회의 혁명적인 선언이 가지는 깊은 의미는 복음선포를 위한 사도의 수가 천 배 혹은 만 배로 늘고, 따라서 그 효과도 그만큼 확대되었다는 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선언 뒤에 깔려있는 달라진 교회관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평신도들이 이제는 성직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존엄성을 지니고 교회의 사명인 복음선포에도 똑같이 중요한 의무와 권리를 지고 어른이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교회 안에서의 역할만 다를 뿐, 책임에 있어서도 차이가 없는 성인(成人)이라고 보는 입장이 그 배경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회의 이 가르침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직자 평신도를 막론한 교회 구성원 모두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래서 공의회는 먼저 성직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주교, 본당 신부, 재속 사제, 수도 사제들이 명심해야 할 일은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는 성직자나 평신도나 모든 신자들에게 공통적이라는 것과, 교회 건설에 있어서 평신도들도 고유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25항).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책임을 지고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밀고,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신뢰심을 가지고 흔연히 맡기는 풍조가 진작되어야 합니다.


신도들 편에서도 이제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세와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인습으로 굳어진 태도를 바꾸는 일이 결코 쉽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평신도 대표의 말은 이해할 만합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더니 이제와서 갑자기 일어서라고 하니 다리가 저리다.”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굳어진 몸과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고,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아직도 우리를 그대로 잡아 앉혀두려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어서야 합니다. 일어서서 밖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복음을 듣게 될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 못지 않게 우리 자신을 위한 일도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그것을 전하고 그 참 가치에 대해서 증언할 때 우리의 신앙은 점점 성장하고 활기를 띠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줌으로써 신앙이 견고해진다”(교회의 선교사명, 제2항)는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지난 공의회는 복음선교 활동이 각자의 의무일 뿐 아니라 <권리>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남에게 전할 수 없는 신앙인이라면 아직 온전한 그리스도신자라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참된 보화로 깨달은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마태 13, 44) 그것을 사게 될 뿐 아니라, <우물가에서 구세주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 (요한 4, 1 - 30)처럼, 즉시 달려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려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루가 12, 49). 예수님의 이 열망은 이제 이 세상 구석구석에 흩어져 사는 우리 하나 하나를 통해서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흔히는 우리가 복음선교를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거나 차로 먼길을 여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옆집에, 또 많은 경우 자기 집안에 아직도 복음의 빛이 뚫고 들어가지 못한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 있는 내가 제일 효과적인 선교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집안이나 이웃 또는 직장이나 가까운 동료 가운데 아직도 신앙을 가지지 못한 분이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도로 바로 나를 거기 보내셨습니다. <조금 후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 다른 어디로가 아니라 내가 있는 바로 여기로,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주님께서는 복음선교를 위한 사도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지금도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마태 9, 38)하시며, 사도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하시는 주님께 우리는 선뜻 대답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 8).


리가 흔쾌히 이 일에 뛰어들 때 우리는 그 옛날 사도들이 겪었던 바를 다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자신의 무능과 온갖 한계들이 극복되고 부족했던 믿음이 굳건해짐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이 놀랍게 실현됨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사도 1, 8) 주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도들처럼 우리도 신앙인으로서 유아기를 벗어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앞선 분들을 바라보며
리 한국의 신앙인들은 복음선교의 역사에서도 가장 자랑스런 선조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먼 길을 달려가서 스스로 복음을 영접해왔다는 사실은 세계 선교사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사례입니다. 그래서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오던 1784년은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그런데 바로 같은 해에 <호남의 사도 유항검>은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한 후 이 지방에서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벌였습니다. 신부나 주교에 대해서는 글에서나 읽었을 뿐이었던 당시에 이 지방에는 순전히 평신도들의 활동에 의해 복음이 불길처럼 번져갔던 것입니다. 그분들은 말하자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2세기 전에 이미 공의회의 정신을 앞질러 실현하셨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분들 가운데 많은 이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서 홀린 피로 이 땅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에서 7분의 성인을 모시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열매처럼 맺게 하는 씨앗이다”하신 떼르뚤리아노의 말처럼, 교구내 곳곳에 뿌려진 순교자들의 피와 그분들의 자취는 오늘도 우리 안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특히 전주교구 평신도들의 돈독한 신앙심과 적극적인 활동상은 그 가장 분명한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이 시대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타고난 우리 선교사명의 중요성은 한층 더 절실해집니다. 우리나라는 근래에 와서 가톨릭 인구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체 인구의 6.5%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조금 더 멀리 뜨고 바라보면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 교회가 큰 몫을 담당해주도록 요청하시는데, 이 아시아주에는 전세계 인구의 약 60%가 살고 있는데 비해서 가톨릭 인구는 그 중 약 2.5%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주변 지역을 생각할 때 우리의 선교열을 불러 일으키는 정황입니다.


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지 거의 2천년이 되어서 앞으로 7년 후면 우리는 강생 후 3번째 맞이하는 천년대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시점을 합당하게 준비하기 위해서 교황께서는 수년 전부터 「복음화 2000년」운동을 주도하시면서, 그 의미심장한 해를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를 무엇보다도 복음선교에 총력을 기울이자고 호소하십니다.


모든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가장 보람있고 중대한 선교사명을 깨닫고, 개인적으로나 교회 전체로서나 간에 우리가 가진 바 능력, 기회, 시간, 인간관계, 재력, 제도적 장치 등 모든 것을 이 한가지 목적을 위해 동원해야 하겠습니다.


어디서부터?
른 분들을 우리 교회에 초대하는 것은 일종의 손님맞이입니다. 그런데 손님맞이는 손님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가 아니라 그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실제로 합당한 준비가 없는 손님맞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초대받은 분이 도착하기 전에 방을 청소하고 가재도구를 다시 정리하며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손님맞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속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우리가 비신앙인을 초대해다가 교리를 가르쳐서 세례성사를 받게 하는 것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일을 크게 그르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시고,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 환경을 변혁시키려고 노력할 때 교회는 복음선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현대의 복음선교 17 - 18항 참조).


러므로 우리는 다른이들을 초대하기 전에 각자 자신의 개인생활을 돌아보고 교회적으로는 성당의 분위기를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서 복음과는 멀거나 반대되는 점들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복음선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선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볼때,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 신앙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는지를 찾아내어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복음선교의 한 형태입니다. 교회로서는, 주일 미사에 오시는 분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따뜻하게 안내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전례를 정성껏 준비하는 일, 각종 작은 모임을 통해서 좀더 사랑이 감도는 분위기를 체험하게 하는 일 등, 이 모든 것들이 훌륭한 복음선교활동에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개받고도 선뜻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인 나타나엘에게 필립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도 개인생활이나 성당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펼쳐놓고 자신있게 “와서 보시오”(요한 1, 46)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일이야말로 복음선교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이런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영세자 수가 아무리 많아도 복음선교가 제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러므로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신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고” 그렇게 해서 “구원받을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났던 것”처럼(사도 2, 43 - 47 참조), 우리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다음 말씀은 복음선교에 임하는 우리가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사람들올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화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 14 - 16).  

우리 각자와 하느님 백성 전체가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이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합니다.


1. 복음선교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배웁시다.
를 위해서
첫째, 모든 신자들은 다음의 문헌들을 정성껏 읽고 숙지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성직자, 수 도자, 사목회 임원, 각 신심단체의 책임자들과 회원, 레지오 마리애 단원 등 선교활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요원들은 이 문헌의 연구에 한층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를 위해 들이는 정성과 시간은, 활동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마르타보다 주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인 마리아의 경우처럼(루가 10, 38 - 42 참조),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선물이 될 것입니다. 

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
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둘째, 교구와 본당에서는 이들 문헌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특별교육계획을 세워 시행하고, 신자들은 이런 교육의 기회에 적극 참가하여 그 정신을 더욱 깊이 깨우칩시다.


2. 성서공부에 가일층의 노력올 기울입시다.
리하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두도록” (베드 전 3, 15)합시다.


3. 각 본당은 주변 여건들을 참작하여 구체적이고 적절한 선교계획을 세웁시다.
리고 계획수립 단계에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교우들이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 실행과정에서도 모든이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합시다. 그렇게 해서 수립된 선교계획과 그 실행에 관해서는 본당간의 정보교환과 새로운 전략의 개발을 위해 적당한 기회에 거교구적 발표회를 가질 것입니다. 그 외에도 각종 회합을 통해서 새로운 선교 전략을 개발하여 교구 전체의 선교정책을 계속 보완해갈 것입니다.


4. 해성학원 산하 모든 학교는 종교감 사제의 지도와 학교장의 책임 하에 자체 선교계획을 세우고 시행합시다.


5. 교구단위 제단체에서도 선교를 우선적 활동목표로 정하고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시다.


6. 예비자 교육에 가일층의 노력을 기울입시다.
담자의 증가와 여러 형태의 신흥 종교로 기울어지는 현상 등 복음 선교활동의 결실을 무력화하거나 약화시키는 추세를 감안하여 사목자들은 예비자 교육을 한층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7. 모든 본당과 기관 그리고 제단체의 선교 계획과 그 실행상황에 관해서는 교구에 보고하고, 교구장 사목방문시에도 이를 중점적으로 보고합시다.



 

1992년 11월 29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이 병 호(빈첸시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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