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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1997년도 사목교서 - 그리스도의해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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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
제 2000년 대희년이 3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이 뜻깊은 해를 맞기 위해 발표하신 회칙
<제삼천년기>에 따르면, 1997년은 <그리스도의 해>입니다. 신앙인 각자와 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만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깨달아,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리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로 되어 있는 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님의 회칙은 물론이고, 한국 주교단이 마련하는 <대희년 길잡이>들도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1. 음성서들 안에는 예수님을 깊이 만남으로써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달아 삶이 온전히 변화하고, 남들에게 그분을 소개하는 사도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을 길으려고 우물가에 나왔다가 뜻밖에 메시아를 만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을 얻게 된 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요한 4, 1-42)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에 속합니다.


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를 떠나 고향 갈릴레아로 돌아가시는 길이었습니다. 도중에 사마리아를 거쳐가게
되어 있었는테,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렀을 때에 피곤한 몸을 쉬실겸 한 우물가에 가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가고 없는 사이에, 뜻깊은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인이 두레박과 물동이를 가지고 물을 길으러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다가가 부탁하십니다. “나에게 물을 좀 주시오.”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는 예수님의 이런 행동이 조금도 놀랍거나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종교 및 문화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그것은 깜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무엇 보다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볼 때, 이교도의 피가 섞이고 따라서 선민으로서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한 열등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인과 접촉을 하거나 그들이 쓰던 그릇을 사용하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생각할 만큼, 두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파여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한 쪽에서 다른 쪽에
무엇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셨을 때, 그 여인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그런데 두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 있었던 이런 민족적 감정과 담벼락 말고도, 당시의 상식으로는, 예수님과 그 여인 사이에 수많은 장벽이 또 있었습니다. 한 쪽이 남자고 다른 쪽이
여자라고 하는 점도 그 하나였습니다. 공공 장소에서는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조차 말을 건네는 일이 없을만큼 남녀 사이의
담벼락이 높던 시절임을 감안할 때, 시내에 갔다 돌아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27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여인이 그 지역에서 널리 알려질 정도로 행실이 단정치 못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같은
사마리아 사람으로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큰 장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겹겹으로
둘러쳐진 담벼락들을 모두 허물고, 그 여인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으신 것입니다.


대방을 단순히 한 “유다인”으로만 생각했던 그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그 깊이가 더해감에 따라, 자기의 일을 거들어 줄 수도 있는 “선생님”으로 여기게 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적 진리를 가르쳐줄 “예언자”라고 믿는가 하면, 마침내는 “메시아”로 깨닫는 데에까지 이릅니다. 자신의 깨달음이 일단 여기에 이르자, 그 여인은 늘 피해만 다니던 동네 사람들에게로 달려가 그 소식을 전했고, 그렇게 해서 <사도>가 된 여인의 도움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달려와 간청한 결과, 예수께서는 이틀 동안이나 사마리아 지역에 머무셨으며, 그 사람들은 결국 그분을 “구세주”로 믿게 됩니다.


렇게 해서, 야곱의 우물가로 물을 길으러 왔던 여인을 포함하여 온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들의 생명 속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 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14절).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어 그 여인이 우물가에 그대로 버려둔 물동이는, 구세주를 깊이 만난 사람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요한 10,10)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2. 시아를 만나 “영원한 생명올 주는 물”을 얻어 마시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타는 목마름을 안고 한낮에 우물가로 나온 사마리아 여인과 같습니다. 우물물애 대한 갈증은 그 영혼 속에 느끼는 더욱 큰 목마름을 보여주는 상징일 뿐입니다. 이미 거쳐간 남자가 다섯이나 되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정식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 여인이 인간 세상 그 어디에서도 깊은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음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께 예배드릴 곳' 즉 어디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여인이 삶의 종국적인 목표를 상실한채 방황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그 여인은, 어디서도 삶의 참 기쁨이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 것 저 것 마음 붙일 곳을 찾아보지만, 영혼의 갈증과 허기는 점점 더 심해질 뿐임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구세주를 만나기까지 인간은 “생수가 솟는 샘을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하여 물이 고이지 않는 웅덩이를 파고있는”(예레미야 2,13 참조) 사람의 가망없는 몸짓을 되풀이하는 셈입니다.


칙 <생명의 복음>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현대는 생명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는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의, 환경오염, 낙태, 폭력, 순간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풍조 등, 그 증상은 우리의 삶 어느 구석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감수성 많은 청소년들이 아무 대책 없이 이런 분위기에 계속 노출되어 있고, 기성인들도 이런 추세 앞에 체념해 버린다면, 세상은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늘날 세상에는 이런 죽음의 문화를 정면으로 거슬러 가는 움직임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 평화, 창조질서보호 등을 위해서 노력하는 개인과 집단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 뚜렷하고 강력한 세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런 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흐름을 돌려, 세상에 생명과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그분을 정확히 아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계시헌장 25항) 하는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여,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깨 대한 무지를 극복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닫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올해를 <그리스도의 해>로 설정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항님께서도 계시헌장을 인용하시면서 모든 신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이 해 동안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거룩한 전례를 통하여, 또는 경건한 독서나 이에 적합한 강의를 통하여, 그 외에 여러가지 방법을 통하여’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성서를 대해야 합니다”(제삼천년기 40항).


러므로 <그리스도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서봉독을 위해서 최대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본당 사목회를 비롯하여 레저오 마리에 등 각종 신심단체 회원들과 가능한 한 다른 많은 교우들도 올 해 안에 구약과 신약 등 성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합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교우들께서도 1999년 말까지는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제 완독하기로 하고 지금부터 이를 시작합시다. 시력이나 다른 건강상의 문제 등 어떤 이유로든지 직접 글을 읽으실 수 없는 분들은 녹음된 성서를 구입하여 성서를 묵상할 수 있겠습니다. 자동차를 많이 이용하시는 분들은 녹음된 성서를 들음으로써 성서 묵상도 하고 시간도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금년의 과제로서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해(1997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의 구원 신비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사도 2,42 참조)이라는 그 본래의 의미로서 교리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는 적절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가톨릭교회 교리서> 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 교리서가 우리말로 완전히 옮겨져서 출판되었으므로, 사목자들은 이를 철저히 연구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우들에게 전달하셔야 하겠습니다. 사목자들 뿐 아니라, 수도자들과 교회 안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시는 평신도들도 이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셔야 하겠습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 잘 깨닫고 하느님 백성의 신앙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교리서는 성서의 가르첨, 교회 안에 살아있는 성전聖傳, 정통 교도권의 가르침, 그리고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과 성인성녀들이 영적 유산으로 물려준 가르침 들을 충실하게 체계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1997년은 우리 <교구설정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2천년 대회년의 직접 준비를 위한 마지막 3년중 첫 해이기도 한 올해에, 우리 교구가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온 마음으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 이토록 뜻있는 계기를 맞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또님과, 다블뤼 주교님으로부터 “한국 순교사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진주”라는 평가를 받으신 이 루갈다 유요안 동정부부 등 수많은 신앙의 선조를 모시고 있는 우리 교구는 참으로 축복받은 땅입니다. 우리는 선조들께서 이룩하신 이 자랑스런 역사를 돌아보며, 그분들의 부끄럽지 않은 후예로서 더욱 자랑스런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4. 렇게 해서, 우리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참으로 만나고 깊이 깨달으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는 주변 세상에 참 생명의 힘과 희망의 빛을 전하는 <복음의 사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다 갖추고 그분께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해도 걷우어들일 수 있는 곡식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애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자리에서 제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생생하게 울려퍼집니다.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다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 (요한 4, 35).




1996년 12월 대림 첫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이 병 호(빈첸시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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