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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1998년도 사목교서 - 성령의해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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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리는 그리스도의 해에 이어, 2000년 대희년을 2년 앞두고 「성령의 해」인 1998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 21,5)라는 주제를 가지고, 지난해에 우리가 교구설정 60주년을 기념한 것도,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며 다가오는 대희년을 좀 더 충실히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 5)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묵시 21,1). 묵시록 21장이 이런 말로 시작해서 펼쳐 보이는 대로, 우리는 슬픔과 울부짖음, 고통과 눈물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며 지난 한 해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꿈은 신앙인들 뿐 아니라, 온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갈망이 깊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만큼 답답하고 걱정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 이렇게 가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짙은 어두움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더욱 심하게 인간성을 상실하고 말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시간이 갈수록 더 확산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연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계속 이대로 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도박, 마약, 각종 폭력 등으로 무너져 가는 윤리질서, 너무나 일찍 어린이를 심한 경쟁 분위기로 몰고 가는 교육풍토, 멀쩡하던 가정 주부와 성실하던 직장인까지 하루아침에 패가망신하게 만드는 각종 유혹의 손길 등,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가 오염되어 가는 것보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신적 공기는 한층 더 빠른 속도로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한 한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은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심하게 망가져 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처럼 어둡고 숨막히는 모습이기 때문에, “이전 것들, 묵은 세상이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 더 절박해 집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런 말들은 그 표현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창문을 열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단순한 꿈이나 말에만 그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실제로 만드셨고 ,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참으로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면 그 새로운 세상은 언제나 눈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2. 희망을 거슬러 희망하며 (로마 4, 8)
수께서 반대자들의 손에 잡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셨을 때, 사람들은 낡은 세상과 그 어두움의 세력이 여전히 판을 치고, 새로운 세상을 실현하려던 그분의 노력은 한낱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본 두 제자는 절망에 빠져서 “침통한 표정”(루가 24,17)을 하고, 한 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상징이던 예루살렘을 떠나 묵은 세상의 상징인 엠마오를 향해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런데, 예수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이 그분을 만나고 부터는 만사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절망은 희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갔던 제자들은 다시 모여들었고,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은 다시 희망의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더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을 때 그들의 희망은 더할 수 없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루가 24,49)  

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에서는, 그 성령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변화시켜 주실 지를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성령께서는 무엇보다도 사도들에게 < 힘>을 주시어 그들이 인간적 결점이나 한계를 극복하고 용감하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제의 삶에서 실천하고 그분을 증거하게 되리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세상이 새로워지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리고 오순절에 성령을 실제로 보내주셨을 때, 제자들과 세상은 과연 그 힘으로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 사이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 오히려 오해와 적대감이 생길 뿐 아니라, 서로 조금이라도 더 갖겠다고 싸우는 관계로 변질될 때,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일입니다. 나라사이, 집단사이, 이웃사이, 심지어 부부사이에도 그 관계가 무너지면, 무엇보다 먼저 말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성령을 받자, 여러 나라에서 각기 다른 말을 쓰고 있어서 전혀 통하지 않던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성령께서는 사람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담벼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이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말이 서로 통할 뿐 아니라. 가진 바 재산도 서로 통하고 나누어서,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는 세상, 그전까지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실현된 것입니다.


3.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 1)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4,32-35). 이것이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이 세상에 이룩하신 새로운 세상입니다. 이 것이 하느님의 나라, 천국의 한 면모입니다.


리고 그 반대가 지옥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더 갖겠다고 다투고, 더 나아가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다면 거기가 바로 지옥, 악마의 나라입니다. 실제로, 2천만원을 빼앗기 위해서 순진한 어린이를 죽인 사건의 범인은 그 일을 저지른 다음부터 자신이 지옥에서 살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마적 경향에 굴복하고 만 순간부터 그 사람은 지옥에 살았던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0-21).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천국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이치로 지옥도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람이 타고 난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사시다가 남을 위해 생명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 마음을 열면, 하느님 나라는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하느님 나라가 잘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상 주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타고 난 이기심을 버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가복음(18장 18-27)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는 이 점에 관해 뜻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묻는 그 젊은이가 어려서부터 착실하게 살아왔음을 확인하신 예수께서는, 이렇게 충고하십니다. “너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큰 부자였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무척 마음이 괴로웠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런데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인간이 타고난 이기적 성향을 그대로 간직하는 한 불가능한 일이, 하느님의 힘으로 그것을 벗어나면 가능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4.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루가 18, 27).
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는 개인이나 기업체나 간에 사람들이 자기 손에 들어와 있는 재화를 순전히 개인적 소유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나 가족 안에서만 그것을 틀어쥐려는 경향입니다. 기업가 할아버지가 젖먹이 손자에게는 엄청난 규모의 재산을 물려주면서 사회의 불우한 이들을 위해서는 아주 인색한 경우를 우리는 흔히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그늘과 어두움은 더욱 짙어져서, 세상은 천국보다는 지옥을 더 닮아가게 됩니다.


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없이 거대한 재산을 누리게 된 그 손자도, 결국 그것 때문에 망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없이 경험해 왔습니다. 부모로서는 자녀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은 거기가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 이상의 도움은 자녀를 위하기보다는 망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내 손에 있는 재화는 본래 하느님께서 잠시 맡겨 놓으신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이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때에만 그것은 백배, 천배의 결실로 불어나 “하늘에 쌓아둔”(마태 6,20) 보물로 계속 남는 것입니다.


교자들은 주님의 이런 가르침을 철저히 따라 사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대희년을 앞두고 순교자들의 삶에서 확인되는 하느님의 놀라운 힘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모든 교회가 제3천년기의 문턱에서 그리스도께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공경은 다양한 형태의 그리스도인 소명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랐던 수많은 언어와 인종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결실을 통해 구세주의 전능하신 현존을 드러내는 일일 것입니다”(제삼천년기 37항). 사람의 힘으로는 본래 불가능한 일이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써 가능하게 되는 모습을 우리는 순교자들에게서 뚜렷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예로, 호남의 사도 유항검님은 양반 가문으로 당시 이 지방에서 유명한 부호였지만, 하늘의 보화를 위해서 그 많은 재산과 대대로 이어오는 가문의 명성 등을 모두 버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선선히 바쳤습니다.


물에 대한 욕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사람도 명예와 출세욕을 떨쳐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조금이라도 높이 올라가려 하고 남 앞에 드러나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선거철입니다. 이 때가 되면 평소에 점잖던 이들도 자기 자신만을 추켜 올리고 남은 온갖 중상 모략을 다 동원해서 깎아 내림으로써 인간의 가장 추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곤 합니다. 방금 전에 한 약속도 뒤집고 표를 더 얻는데 유리할 듯하면 지켜온 대의명분이나 사회 정의도 가볍게 버립니다. 그리고 유권자들 측에서도 후보자의 인격이나 자질을 보고 국가의 공동선을 위해 투표하기보다 지연, 학연, 혈연에 따라 생각 없이 움직임으로써 나라 일을 크게 그르치는 일에 공범자가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신앙인들마저 그런 일에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면 그것은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이 사회의 부패를 막는 데에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입니다.


5.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증인들(히브 12, 1)

런데 윤지충님은 알아주는 양반 가문 출신으로 당시 출세의 관문이었던 과거시험을 향해 진사시험에 합격했었습니다. 당시에 출세하고 높은 관직에 오른다는 것은 현세에서 권력의 정상에 있는 임금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으신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터 그는 그런 욕망을 모두 버렸습니다. 배교를 강요하는 감사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한다면 제가 어디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온갖 고문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으면서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지엄하신 하느님의 법도를 따르기 위해서라면 극형도 달게 받겠다고 말하며, 33세의 젊음을 주님께 봉헌하였습니다. 권상연 야고보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 천주교 순교사에서 진주와 같이 빛나는 존재”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부부의 삶은 요즈음 세태에 비추어 더욱 새롭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순이 루갈다는 14세 되던 해에 첫 영성체를 통해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 감격을 흘려버리지 않고, 일생 깨끗한 몸을 주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년 후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유중철 요한과 형식상의 결혼식을 올리고 4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젊은 남녀가 그런 상황에서 처음의 뜻을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 것인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형을 앞두고 어머니께 드린 편지에서 루갈다 자신이 이를 확인해 주지 않았던들, 아무도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전주로 내려온 후 평소에 마음에 두어온 일을 마침내 성취 할 기회를 얻어서 9월과 10월에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약속하고 서원하였습니다. 그 이후 4년 동안을 사실상 남매처럼 살아왔는데, 그동안 약 열 번 정도는 저희 힘만으로 서원을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만치 유혹이 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흘리신 수난의 거룩한 피를 힘입어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두고 어머님께서 궁금하게 여기실까 하여 이렇게 몇 자 올리오니, 이 글을 보시거든 저를 본 듯이 반갑게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동정부부는 하느님의 힘으로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래 서로를 풍요하게 하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남녀 사이의 관계가 방향을 잃어 가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이 동정부부가 보여주는 영웅적 정신력은 오늘날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힘으로 살아 있습니다. 이분들은 인간의 행복이 결코 육체적 쾌락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하느님의 힘을 빌리면 인간의 정신력이 그 육체의 본능적 욕망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의 동정부부는 성 윤리의 타락으로 대표되는 도덕적 무질서와 인간관계의 파괴로부터 우리 사회를 구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등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6. 있는 것을 다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 44)
질은 본래 좋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시고 그것을 “좋다” “매우 좋다”고 하셨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2데살 3,10)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 누구나 성실히 일해야 합니다.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하여 남의 인정을 받고 거기에 상응한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더 큰 책임을 지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또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기”(창세 3,18) 때문에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사람과 좋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본래 좋은 것으로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돕고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떠나 질서를 잃고 제자리에서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나쁜 것으로 되고 사람을 하느님에게서조차 멀어지게 합니다.


느님만이 가장 좋고 제일 높으신 분이며, “모든 것을 다 팔아 살 만큼”(마태 13,44) 비할 수 없이 귀한 보물임을 실제의 삶으로 고백할 때에만, 본래의 취지는 살아나고 그 질서 는 지켜집니다. 그것이 허물어지면 원래 좋았던 것들이 나쁜 것으로 변하고 맙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유혹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빵도 좋고, 사람들의 인기나 칭찬도 좋으며, 이 세상의 권세와 영화도 그 자체로 볼 때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악마는 하느님보다 그것들을 더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유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늘날 우리에게도 악마의 유혹은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언제나 우리 앞에서 어른거립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처럼 단연코 “아니다”하고 물리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죽느냐 사느냐 하는 투쟁의 현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성령의 칼”(에페 6,17)이라고 표현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찌를 때에만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돌로 빵을 만들어 보라는 악마의 유혹에 대해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하는 성서 말씀(신명 8,3)을 가지고 대항하심으로써 그것을 이겨내셨습니다. 나머지 유혹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때마다 성서의 말씀(신명 6,13.16)을 들어 그것을 쳐 이기셨던 것입니다.


신 속에서 그럴듯한 목소리로 은밀히 속삭이는 악마, 주변 사회의 일반적 흐름, 자기 자신의 잘못된 경향 등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우리 신앙인의 처지를 두고 예수께서 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앓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루가 9,23-25) 이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을 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인은 언제 어디에서 살든지 누구나 순교자인 것입니다.


1997년 9월 6일에 선종하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대표적인 현대의 순교자였습니다. 수녀님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버린 이들, 아무리 거둬도 거둬도 끝없이 널려진 병자와 걸인들을 데려다가 따뜻이 돌보셨습니다. 어차피 건강을 회복할 가망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생전에 사람 대우를 전혀 받아보지 못한 이들이, 죽을 때만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람 대접을 받아보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 수녀님의 뜻이었습니다.


7. 현대의 순교자(제삼천년기 37항 참조)
레사 수녀님은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의 가장 무서운 적은 사랑의 빈곤입니다.” “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면 여러분과 내가 세상의 가난을 함께 나누면 됩니다.” 1981년에 한국에 오셨을 때 그분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가난을 나누겠다고 결심만 한다면 한국에서 헐벗고 굶주리거나 길거리에서 죽어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두교를 국교로 하고 그리스도교 신자는 극소수에 불과한 인도에서 데레사 수녀님의 장례를 국장으로 한 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23개 나라에서 특별 조문사절을 보냈고 특히 인도의 전통 종교인 힌두교를 비롯해서 불교, 이스람교 등 주요 종교의 대표자들이 각기 고유의 예를 갖추어 종교가 전혀 다른 데레사 수녀님의 영전에 갖은 존경을 표시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없었던 일이며 어쩌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환자의 상처를 씻어주면서도 하느님을 만지는 심정으로 그 일을 할만치 온 몸으로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신 데레사 수녀님은 종교나 교파의 차이에 관계없이 누구의 눈에나 참된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환히 볼 수 있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전세계를 뒤덮는 위력을 가지고 하루 종일 뉴스를 전하는 미국의 한 상업방송은 데레사 수녀님의 서거 소식과 함께 그분의 삶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특히 그분의 장례식이 있던 날은 모든 계획을 중단하고 대여섯 시간에 걸쳐 그 장면을 전 지구촌에 소개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노벨 평화상을 탈 때에도 헌 헝겊 손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 나타나셨던 1미터 50의 아주 작은 체구를 지닌 데레사 수녀님은 그 착한 행실로 해서 온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생각하고 찬양하게 했던 것입니다.


런데 데레사 수녀님 한 분만 현대적 의미의 순교자적 삶을 사신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눈에 뜨이지는 않아도 우리 주변에는 그 비슷하게 영웅적인 정신력으로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재산, 재능, 시간, 힘, 기회, 전문지식, 사회적 위치 등을 자기의 것으로만 움켜쥐지 않고, 이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 분들은 오늘도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 모두가 현대적 의미의 순교자들입니다. 1997년 7월 21일 변산 해수욕장 앞바다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린이들을 구하고 자신들은 탈진하여 숨져간 정인성, 신준섭, 장만기 세 학생도 그런 예입니다. 이 학생들은 이기주의로 병들어 있다고들 흔히 말하는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을 흔들어 깨우고, 짧았지만 참으로 보람있고 아름답게 그 삶을 마쳤습니다. “노인은 오래 살았다고 해서 영예를 누리는 것이 아니며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니다”(지혜서 4,8)고 한성서의 말씀을 새삼 생각나게 하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8. 성령의 힘(사도 1, 8)
리가 주님을 증거한다는 것은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같은 정신을 가지고 같은 모습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죽음, 부활, 승천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당신에게 힘을 주셨던 성령께서 그들에게도 똑같은 힘을 주시어 당신께서 하시던 일을 그들도 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 하신 당신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상 예수께서 마귀를 물리치실 수 있었던 것은 요르단강에서 세례 때에 “성령을 가득히 받으셨기”(루가 4,1) 때문이며,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기름처럼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루가 4,18 참조)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성령을 가득히 부어주심으로써 그분을 그리스도(메시아)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왕으로서, 사제로서, 그리고 예언자로서 인류 구원의 놀라운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런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같은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이 3대 직무를 이어 받아 각자 나름대로 그것을 수행한다고 천명하였습니다(교회 헌장 34-36항).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같은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언자로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왕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며, 사제로서 기도와 희생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과 세상을 봉헌할 사명이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론 <그리스도인의 3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세상과 교회 안에서 각자 서 있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그 방법과 역할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의 나무 안에서 뿌리, 줄기, 잎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상이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전체를 위해서 서로를 보완하면서 돕듯이, 평신도, 수도자, 사제 역시 세상 안에서 교회가 그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서로의 부족을 깨우고 각자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렇게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지 2000년이 지나고 세 번째 천년기를 맞이할 대희년을 눈앞에 두고 주님께서 이룩하고자 하신 하느님이 몸소 다스리시게 하는 데에 우리의 몫을 다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이 점점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제삼천년기> 에 따르면 성령의 해는 인류가 희망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데에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제삼천년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 24)
“이러한 종말론적 전망 안에서, 신앙인들은 희망이라고 하는 대신덕(對神德)을 새롭게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골로 1,5) 이 희망에 대해서 이미 들었습니다. 희망에 바탕을 둔 근본 자세는 한편으로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 최종 목적지를 잊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독려해 주고, 다른 편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맞도록 현실을 변화시키는 매일의 노력에 확고하고도 심원한 동기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2-24)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자신의 마음 안에서, 각자가 속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사회 환경 안에서, 그리고 세계 역사 자체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오도록 준비하면서, 그 하느님 나라가 결정적으로 볼 것을 기대하는 희망을 새로이 굳게 지님으로써 제3천년기를 시작하는 대희년을 준비할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또한 흔히 우리 눈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금세기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희망의 표징들을 더 잘 식별하고 그 적극적인 가치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일반 사회적으로는 그런 희망의 표징들이 인간 생명에 봉사하는 과학기술의 진보, 특히 의학 분야에서의 발전, 환경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관한 더욱 깊은 각성, 평화와 정의가 침해되는 곳에서 이를 회복시키려는 노력, 다른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특히 세계의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에서 추구하는 화해와 연대를 위한 열망 등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희망의 징표들이 은사들을 받아들이고 평신도를 승격시킴으로써 성령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추세, 그리스교 일치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일, 다른 종교 및 문화들을 상대로 하는 대화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 등의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희년의 직접 준비를 위한 두 번째 해에 모든 교우들이 특별히 마음을 모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 안에서 일치의 중요성입니다. 실상 성령께서 여러 가지 선물과 은사를 교회에 내리신 것도 바로 이 일치를 겨냥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특히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에 나타나는 교회론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널리 보급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중요한 문헌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가 성령의 활동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사도적 직무로서 보장되고 상호간의 사랑으로써 지탱된다(1고린 13,1-8 참조)는 점을 강하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한 우리 신앙의 가르침을 잘 설명해 주면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책임을 더욱 깊이 깨닫고 교회적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도 더욱 생생한 감각을 얻게 될 것입니다.”(제삼천년기 46-47항)


10. 공동이익을 위해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의 다양한 선물(1고린 12, 7 참조)
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해를 맞이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가족 모두가 각자 자기의 자리와 역할을 감안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와 힘을 최대로 발휘함으로써 하느님 이 몸소 다스리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키워주고 약점을 보완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의 밑바탕이 되시는 성령의 활동이 우리 각자 안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마음을 그분께 열어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미사와 같은 전례기도, 기도서를 보거나 암기하고 있는 기도문을 외우는 염경기도 등이 모두 필요하고 유익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각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아버지께” (마태 6,6) 드리는 기도가 전제될 때에만 그 참 뜻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권고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러므로 성령의 해를 맞이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하느님 백성 전체는 기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각자 자기 방이나 성체 앞에서 조용히 묵상하며 “인간 마음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를 뚫고 들어가 그것을 채워주시는”(생명을 주시는 주님, 45항) 성령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예수님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요한 16,12-15 참조) 그분의 정신인 성령을 각자 자신의 진정한 정신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국 교회는 열성적인 성직자, 헌신적인 수도자, 좋은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태세가 되어 있고 실제로 놀라운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평신도들을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순교자들의 땅에 세워져서 그분들의 정신이 핏속에 뜨겁게 흐르고 있는 전주교구 신앙 공동체는 이 모든 점에서 특별히 축복 받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깊이 깨닫게 하고 교회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생생히 살아있게 하는 성령의 해를 맞이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하나가 되어 각자 자신의 강점을 최대로 발휘하고 약점을 서로 보완함으로써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힘을 더욱 활발하게 살린다면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교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현할 때, 그렇게 해서 모아진 예비신자들을 상대로 교리교육을 할 때, 어린이 교리에서부터 기성 신자들을 상대로 한 신앙 재교육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교육과정을 추진할 때, 사회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할 때, 미사전례를 준비하고 실행할 때 등등, 교회생활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이루어 나갈 때 하느님 백성의 이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모두가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면 교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렇게 될 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지상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20)




1997년 대림 첫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이 병 호(빈첸시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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